두려움과 맞서기

작성자
표재근
작성일
2024-03-30 16:25
조회
34
환경의 어려움이 올 때, 두려워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이 때, 두려움이 커보이는가, 하나님이 더 커 보이는가에 따라 현재 우리의 신앙이 어떠한가를 가늠할 수 있다. 신앙이 어릴 때에는 하나님보다 두려움이 더 커 보이지만, 신앙이 성장함에 따라 하나님에 대한 믿음으로 그 두려움을 이겨나가게 된다. 나아가 환경보다 더 강하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확고해지게 되면, 환경이 어떠한 모양으로 다가온다 할지라도 두려워하지 않고, 그 환경을 통제하며 변화시켜나가게 된다. 이처럼 신앙이 성장하면 두려움은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성장에 이르기까지의 과정가운데 다가오는 수많은 두려움들은 우리를 좌절시키며, 때로는 환경에 제대로 부딪쳐보지도 못한 채 무너지게 한다.

인간의 삶이 불안하고 신경질적이고 조급하며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삶이 되는 근본적인 이유는 두려움이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 건강에 대한 두려움, 물질에 대한 두려움, 자녀에 대한 두려움 등으로 인하여 우리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이 아닌, 세상적인 삶으로 움직여가게 된다. 주어진 상황을 올바로 판단하지 못할 뿐 아니라, 끊임없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성령님의 인도하심도 느낄 수 없게 된다. 이처럼 분별력을 상실한 채 환경에 부딪쳐나감으로써 우리의 삶은 심한 무너짐 가운데 놓이게 된다.

두려움을 이기기 위해서는 환경이 아무리 힘들고 어려울지라도 기도로써 하나님께 나아가야 한다. 그러할 때, 우리는 있는 그대로의 환경을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의 여유와 그 환경을 변화시켜나갈 수 있는 힘을 갖게 된다. 또한 마음속에 울려오는 성령님의 음성에 따라 주어진 상황을 정확히 판단하여 올바른 삶으로 움직여가게 된다. 나아가 모든 미래를 하나님께 맡기는 영적성숙을 이룰 때, 우리의 삶은 하나님의 역사로 인해 강력한 움직임을 갖게 된다. 수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통해 하나님을 느끼게 된다.

우리는 느헤미야를 통해 두려움을 다루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 느헤미야는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이스라엘의 자손이었지만, 바벨론왕국의 서열 2위에 올라 왕의 술과 음식을 맡는 관원이 되었다. 당시 왕의 술과 음식을 맡았다는 것은 느헤미야가 왕을 독살의 위험으로부터 지킬 뿐 아니라, 모든 국사에 조언을 하는 가장 친밀하고 가장 신뢰받는 자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느 2:1-3 아닥사스다왕 이십년 니산월에 왕의 앞에 술이 있기로 내가 들어 왕에게 드렸는데 이전에는 내가 왕의 앞에서 수색이 없었더니 2 왕이 내게 이르시되 네가 병이 없거늘 어찌하여 얼굴에 수색이 있느냐 이는 필연 네 마음에 근심이 있음이로다 그 때에 내가 크게 두려워하여 3 왕께 대답하되 왕은 만세수를 하옵소서 나의 열조의 묘실 있는 성읍이 이제까지 황무하고 성문이 소화되었사오니 내가 어찌 얼굴에 수색이 없사오리이까

어느 날 느헤미야는 기도하는 가운데 무너진 이스라엘을 재건하라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듣게 된다. 그러나 멸망시킨 이스라엘을 재건한다는 것은 바벨론왕국으로서는 탐탁치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그러한 이스라엘의 재건을 위해 자신을 이스라엘로 보내달라고 청할 경우, 느헤미야는 왕의 노여움을 사 한 순간에 처형당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갑자기 왕이 왜 얼굴에 수색이 있는지, 마음속에 무슨 근심이 있는지 물어오자, 느헤미야는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었다.

느헤미야는 그때에 내가 크게 두려워하였다고 그때의 상황을 기록하고 있다. 이는 오늘 우리가 두려움에 대하여 어떠한 관점을 가져야할 것인가를 명확히 보여준다. 우리는 두려움을 인정해야 한다. 오늘 내가 두렵고, 오늘 내가 연약하며, 오늘 내가 할 수 없음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께 우리의 문제를 들고 나가야 한다. 두려움을 인정할 때, 우리는 비로소 하나님을 향해 손을 뻗을 수 있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느헤미야는 죽을 수도 있다는 큰 두려움에 휩싸였다. 하지만, 그 두려움은 그로 하여금 오히려 하나님에 대해 더 강한 믿음을 갖게 했고 그 하나님을 더욱 신뢰하게 했다. 두려움과 맞서 왕 앞으로 나아가게 했다. 그 결과 왕이 그를 이스라엘의 총독으로 임명하고 이스라엘의 재건을 위하여 파견하는 놀라운 역사가 주어졌다.

한 성도가 어려운 상황에서도 최선을 다해 자녀를 잘 키우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그러나 교회생활과 교회에서 운영하는 대안학교에서의 생활을 지켜본 담임목회자는 아이에게 문제가 있음을 파악했다. 그리고 성도를 불러 아이의 문제를 지적하며 이대로 방치할 경우, 심각한 상황에 빠질 수 있음을 경고했다. 이럴 경우, 대부분의 부모들은 반발하며 자녀의 문제를 인정하지 않으려한다. 두려움으로 인해 그 상황을 회피하려한다. 그러나 놀랍게도 이 성도는 회피하지 않았다. 그 즉시 자신의 두려움을 인정하며 앞으로 어떻게 해야 좋을지 도움을 구하였다. 그리고 목회자의 권면에 따라 매일 저녁 아이를 위해 기도하는 한편, 그동안 지나치게 염려하고 간섭하며 부적절하게 수용해왔던 자신의 잘못된 태도들을 끊어내고 있다.

오늘 우리는 두려움으로 인해 고통의 환경을 회피한다. 부부간의 문제를 회피하고, 자녀와의 문제를 회피한다. 직장에서의 문제를 회피하며, 힘들게 하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멀리한다. 그러나 피하기만 해서는 어떠한 결과도 얻지 못할 뿐 아니라, 삶은 더욱 고통 속으로 빠져갈 뿐이다. 우리는 인정해야 한다. 나는 할 수 없는 존재임을 인정하고, 무능력한 존재임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해야 한다.

사람은 두려울 때 진실해진다. 두려울 때 하나님의 음성에 민감해지며, 두려울 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마음이 열린다. 이로 인해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우리의 삶에 시험과 연단을 주심으로써 두려움을 갖게 하신다.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인정하며 하나님께로 나아오게 하신다. 다시금 하나님과 함께 하는 축복된 삶으로 우리를 인도하신다. 따라서 두려움의 환경이 올 때, 우리는 회피하거나 도망가는 것이 아니라, 그 두려움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 내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나를 도와주소서’라고 고백하며 하나님께 나아가야 한다. 이처럼 두려움을 인정하고 하나님을 바라볼 때, 우리는 두려움과 맞설 수 있는 용기를 갖게 된다. 두려움과 맞서 삶에 새로운 변화들을 이루어가게 된다.

사람들은 쉽게 가정의 병에 걸린다. 가정의 병이란, 일이 이렇게 저렇게 될 것이라고 미리 판단하는 병이다. 예를 들어 뉴스에서 군사분계선에서의 소소한 분쟁을 보도하면 당장 전쟁이 날 것처럼 불안해한다. 최근 위암환자가 늘었다고 하면, 그 즉시 배가 아파오는 듯하고, 추운 날씨로 뇌경색환자가 늘고 있다고 하면, 그 즉시 뒷목이 뻣뻣해오는 것이 금방 쓰러질 것만 같다. 이처럼 내면에 두려움이 깔려 있는 우리는 긍정적인 가정보다는 부정적인 가정을 함으로써 현실을 회피하려 한다. 시도해보기도 전에 스스로 좌절하며 포기한다. 그러나 이러한 가정의 병을 이겨내지 못한다면, 우리는 일평생 두려움에 갇혀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연약한 존재로 무너지게 된다.

시 27:1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시편기자는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겠느냐고 고백한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어떠한 절망과 고통가운데 있을지라도 우리와 함께 하기 원하신다. 우리가 두려움으로 인하여 피하고 도망하는 것이 아니라, 그 두려움의 환경과 직면하기를 원하신다. 내가 할 수 없음을 인정하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기 원하신다. 하나님을 의지하여 두려움에 맞서는 우리에게 빛이 되기 원하시고 구원이 되기 원하신다.

최근 어린 학생들이 부모를 폭행하거나 집에 방화를 하거나 심지어 부모를 살해하는 일들이 자주 보도된다. 부모의 끊임없는 잔소리와 간섭을 견디지 못한 어린 아이들이 한 순간 자신을 통제하지 못하여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것이다. 이러한 고통의 근본적인 원인은 두려움이다. 두려움은 우리로 하여금 사람, 술, 담배, 도박, 컴퓨터게임, 쇼핑, 비난 등, 특정한 것에 집착하게 한다. 부정적인 것들로 삶의 근본적인 부분들을 형성해 나가게 함으로써 많은 문제들을 야기한다.

인간은 변화를 소망하는 동시에 변화를 두려워한다. 그러나 변화하지 못하는 삶은 무너지고 쓰러진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잘못된 삶의 모습들을 바꾸기로 마음먹었다면, 바꿔내야 한다. 변화를 거부하는 두려움과 맞서야 한다. 자신이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가를 인정하고 손을 내밀어 하나님을 붙잡아야 한다. 그러나 여전히 두려움에 갇혀 자신을 합리화하며 어떠한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면, 지금 당장은 문제가 없어보일지라도 변화되지 못한 그 부분들이 어느 한순간에 우리의 삶을 치명적으로 파고들어 무너뜨리게 됨을 기억해야 한다.

히 10:35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느니라

요일 5:14 그를 향하여 우리의 가진바 담대한 것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히브리서기자는 우리의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고 권고한다. 또한 사도 요한은 우리가 담대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하나님께서 응답하시기 때문이라고 고백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구할 때, 분명히 들어주신다. 이 확신을 가지고 우리는 담대하게 세상과 부딪쳐 나가야 한다. 오늘 우리를 짓누르는 두려움과 싸워나가야 한다. 그러할 때, 보이지 않던 길들이 보여지게 된다. 막혀있던 담들이 무너지게 된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도우심과 함께 큰 상을 얻게 된다.

끊임없이 요동하는 환경 속에서 인간은 두려워한다. 때로 이 두려움은 하나님보다도 더 크게 다가온다. 그러나 두려움은 우리를 불안하고 조급하며 이기적인 삶으로 몰아간다. 분별력을 상실하고 하나님께서 원하지 않는 삶으로 나아가게 한다. 부정적인 가정으로 자신을 합리화하며 두려운 현실을 회피하게 한다. 따라서 이 두려움을 이겨내지 못하게 되면, 우리는 일평생 두려움에 갇혀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연약한 존재로 무너지게 된다.

두려움을 이기기 위해서는 첫째, 두려움을 인정해야 한다. 오늘 내가 두렵고, 연약하며, 할 수 없음을 인정해야 한다. 둘째,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어떠한 절망과 고통가운데 있을지라도 우리와 함께 하기 원하신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두려움의 환경에 직면해야 한다. 셋째, 모든 미래를 하나님께 맡겨야 한다. 하나님의 뜻대로 구할 때, 반드시 들어주시는 하나님을 확신하며 담대히 세상과 부딪쳐 나가야 한다.

이처럼 두려움을 인정하고 하나님을 바라볼 때, 우리는 두려움과 맞설 수 있는 용기를 갖게 된다. 또한 환경을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와 정확히 판단하여 올바른 삶으로 움직여갈 수 있는 분별력을 갖게 된다. 나아가 환경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강한 확신으로 어떠한 환경에도 두려워하지 않으며, 그 환경을 변화시켜나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