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족의 미학
작성자
표재근
작성일
2021-12-01 18:46
조회
1076
만족함은 우리의 삶을 아름답게 하고, 우리의 풍성함을 많은 사람들과 함께 나누게 합니다. 만족이란 차고 넘칠 때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백 원을 갖고도 만족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천만 원을 가지고도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따라서 만족함이란 현재 내가 가진 것에 감사하며, 더 많은 것을 필요로 하지 않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출 16:13-20> 저녁에는 메추라기가 와서 진에 덮이고 아침에는 이슬이 진 사면에 있더니 14 그 이슬이 마른 후에 광야 지면에 작고 둥글며 서리같이 세미한 것이 있는지라 15 이스라엘 자손이 보고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여 서로 이르되 이것이 무엇이냐 하니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어 먹게 하신 양식이라 16 여호와께서 이같이 명하시기를 너희 각 사람의 식량대로 이것을 거둘지니 곧 너희 인수대로 매명에 한 오멜씩 취하되 각 사람이 그 장막에 있는 자들을 위하여 취할지니라 하셨느니라 17 이스라엘 자손이 그같이 하였더니 그 거둔 것이 많기도 하고 적기도 하나 18 오멜로 되어 본즉 많이 거둔 자도 남음이 없고 적게 거둔 자도 부족함이 없이 각기 식량대로 거두었더라 19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기를 아무든지 아침까지 그것을 남겨 두지 말라 하였으나 20 그들이 모세의 말을 청종치 아니하고 더러는 아침까지 두었더니 벌레가 생기고 냄새가 난지라 모세가 그들에게 노하니라
하나님께서는 애굽의 혹독한 노예생활로 고통스러워하던 이스라엘민족을 구원해 내시고, 약속하신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셨습니다. 그러나 가나안 땅을 앞에 두고 이스라엘민족은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함으로 인하여 40년이라는 긴 시간을 광야에서 생활하게 되었습니다. 광야는 황폐하여 버려진 땅으로써 곳곳에 사막이 놓여있고, 풀과 나무조차 제대로 자라지 않는 땅입니다. 그런 곳에서 식량과 물이 떨어지면, 더 이상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더군다나 수백만 명이 함께 움직여야 한다면, 아무리 충분한 식량과 물이 있다할지라도 선뜻 광야로 들어설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의 삶을 인도하시고 축복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과감하게 광야로 들어섰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40년간 저녁에는 메추라기가 진에 와서 덮이게 하심으로 고기를 먹이시고, 아침에는 만나를 내리심으로 일용할 양식을 삼게 했습니다. 반석을 명하여 물을 내심으로 그들이 목마르지 않도록 하셨습니다.
동일하게 하나님께서는 삶의 고통과 어려움으로 좌절하고 무너진 우리를 건져내어 모든 것이 풍성하고 아름다운 축복의 땅으로 인도하고자 우리에게 구원의 손길을 뻗어주셨습니다. 그러나 축복의 땅에 이르기 위해서는 광야를 통과해야 합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영원한 천국을 소망한다면, 우리는 우리를 책임지고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실 하나님의 손을 붙잡고 과감하게 광야로 들어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어떠한 고난과 역경 앞에서도 우리를 붙잡아주시고 채워주시는 하나님의 축복과 은혜들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처음 만나가 내리던 날, 하나님께서는 각자에게 필요한 만큼만 만나를 취하게 하셨고, 그것은 부족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다음날 아침까지 남겨두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 중에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내일을 위하여 남겨둔 자들이 있었지만, 다음날 아침 벌레가 생기고 냄새가 나서 먹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그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진노하셨습니다.
신앙의 삶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오늘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내일의 일은 내일 염려하고, 오늘 먹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일용할 양식을 주시는 하나님께서 오늘 공급해 주신 것으로 오늘을 살고, 내일은 내일 공급해주시는 것으로 살아가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각자에게 필요한 만큼, 부족하지 않도록 채워주시는 하나님을 의지하여 만족하며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오늘보다 내일을 중요시함으로 인하여 실수하고 실패하며 무너져갑니다. 물론 미래를 준비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지나치게 염려하게 될 때, 그 염려로 인하여 오늘의 삶이 무너지게 됩니다. 미래를 준비한다는 명목으로 다른 사람들과 처절하게 경쟁하고, 내가 가진 것을 움켜쥡니다. 자신의 삶과 가족을 돌아보지 않고, 이웃을 돌아보지 않습니다. 필요 이상의 부, 필요 이상의 권력, 필요 이상의 명예를 취함으로 자신의 몫을 빼앗긴 많은 사람들을 추위와 배고픔으로 몰아넣고, 고통과 아픔가운데 놓이게 합니다. 이처럼 내일을 염려하는 자들로 인해 시간이 흐를수록 이 땅은 더 많은 고통과 더 많은 아픔 가운데 놓이게 됩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오늘을 소중하게 여겨야 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것들에 만족하고, 우리가 가진 것을 나눔으로써 우리의 가족과 이웃들을 기쁘게 해야 합니다. 오늘의 삶에 우리가 만족하고 기뻐한다면, 내일의 삶 역시 소망이 있고, 도전적인 삶이 되며, 변화를 이루는 삶이 됩니다. 오늘을 이루고, 오늘을 성공시키는 자만이 내일도 성공시킬 수 있고, 미래를 변화시켜나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늘에 만족하지 못하고, 오늘을 이루지 않으면서 막연히 내일만, 미래만을 좇아 살아간다면, 인류의 역사는 미래가 있을 수 없고, 개인의 삶 역시 황폐하게 됩니다.
<잠 30:8-9> 곧 허탄한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 나로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내게 먹이시옵소서 9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적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
한 신앙인은 하나님께 자신을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며,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먹여달라고 간구하고 있습니다. 너무 부하면 교만하여져서 하나님을 부인할까 두렵고, 너무 가난하면 도적질하여 하나님을 부끄럽게 할까 두렵기 때문이라고 덧붙입니다. 이러한 삶이야말로 필요한 대로 채워주실 하나님으로 인하여 만족하는 삶,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어가는 지혜로운 삶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자녀들의 삶을 축복해주시고 더욱 풍성하게 하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의 필요한 대로 채워주시는 하나님으로 만족한다면, 우리는 너무 부하게 되지 않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즉, 우리가 필요한 것 이상의 것들은 다른 사람들을 위해 나누어줄 것입니다. 우리를 통하여 하나님의 축복이 수많은 사람들에게로 흘러들어가게 할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에게 필요한 것 이상의 것들을 취하게 되면, 수백 수천 명의 고픈 배를 채울 수 있는 자원이 나 한 사람만의 즐거움을 위하여 필요 없는 곳에 허비됩니다. 그러나 그것을 나눌 때, 그 자원은 세계 곳곳의 배고픈 자들을 먹이고, 병든 자들을 치료하며, 배움이 부족한 자들을 가르칠 것이며, 하나님의 교회들을 세워나갈 것입니다.
전쟁 직후 어려운 시기에 한 시골학교 선생님께서 점심시간이면 도시락을 싸오지 못하는 학생들에게 자신의 도시락을 나누어주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은 수돗물로 배를 채웠습니다. 우연히 이 모습을 본 학생들은 선생님의 사랑에 보답하기 위하여 더욱 열심히 공부했고, 나라를 부강하게 만드는 훌륭한 일꾼들로 성장하였습니다. 이처럼 자신의 삶에 만족한 자들은 다른 사람들을 돌아볼 수 있고, 그들의 필요를 채우기 위하여 선뜻 자신이 가진 것들을 나눌 수 있습니다. 또한 그 나눔을 통하여 많은 자들이 삶의 소망을 얻어 새로운 삶으로 변화될 수 있습니다.
새벽마다 쓰레기를 치우시는 분들에게 여름이면 아이스크림, 겨울이면 뜨거운 차를 대접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 자란 딸이 있었습니다. 성장하여 결혼을 하게 되었고, 그 또한 종종 거리를 청소하시는 분들에게 차를 대접했습니다. 어느 추운 겨울 날, 아이와 함께 대합실에 있을 때, 어린 아들이 뜨거운 커피 한잔을 뽑아서 역을 청소하고 계시는 아주머니께 갖다드리는 모습을 보면서 젊은 어머니는 자신의 모델이 되어준 친정어머니께 감사한 마음을 가졌습니다. 반면에 한 젊은 변호사는 자신에게 변호를 의뢰한 가난한 노파가 부득이한 상황에 처하여 단 몇 만 원을 빌려달라고 요청하는 것을 매정하게 거절합니다. 한 게으른 며느리는 가족의 행사에 뒤늦게 도착해서는 식사만 하고 돌아가 버립니다. 이처럼 작은 것조차 나누지 못하는 마음을 갖게 된 것은 이들이 자라오는 동안에 주어진 삶에 만족하는 모델, 나누고 헌신함으로 기뻐하는 삶의 모델들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최상의 만족 상태를 의미하는 만족의 미학은 세상의 부와 명예와 권력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통해 얻어집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의 마음이 만족할 때, 우리는 우리를 미워하는 자들을 사랑할 수 있고, 마음에 들지 않는 자들을 품을 수 있으며, 다른 사람들의 고통과 아픔을 위로할 수 있습니다. 또한 필요 이상의 것을 취하지 않는 삶, 필요 이상의 것들은 나누는 삶, 꼭 필요한 곳에 나누어주기 위해 불필요한 소비를 하지 않는 절제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러한 우리의 삶은 우리를 보고 자라는 자녀와 뒤따르는 세대들에게 아름다운 삶의 모델이 됩니다.
<출 22:25> 네가 만일 너와 함께한 나의 백성 중 가난한 자에게 돈을 꾸이거든 너는 그에게 채주같이 하지 말며 변리를 받지 말 것이며
가난한 자에게 돈을 빌려줄 경우, 우리는 그들에게 돈을 갚으라고 재촉하지 말고, 이자를 받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빌려줄 돈이 있다는 것은 이미 우리가 필요한 것 이상을 갖고 있는 부한 자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만족함을 얻었다면, 어렵고 힘들어서 우리에게 도움을 청하는 자들의 손을 부끄럽게 하지 말아야 할 뿐 아니라, 그들의 힘든 마음을 따뜻하게 위로하고 격려해 주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땅의 모든 고통을 품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셨습니다. 지치고 힘든 자들을 품어주셨고, 오늘 우리를 품어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마음속에 기쁨과 평강과 소망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 땅의 수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지치고 힘든 가운데서 어느 누구에게 기대어 울 수도, 그 마음을 토로할 수도 없어 고통스러워합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만족함을 얻은 우리가 그들을 안아주어야 합니다. 작은 예수가 되어 고통가운데 있는 수많은 자들의 위로가 되어주고, 기대어 울 수 있는 등이 되어주며, 그들의 소망이 되어주어야 합니다.
만족의 미학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만족하는 삶에서 얻어집니다. 각자에게 필요한 만큼, 부족하지 않도록 채워주시는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오늘의 삶에 만족하게 되고, 어떠한 고난과 역경 앞에서도 붙잡아주시고 채워주시는 은혜들을 경험하게 됩니다. 또한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시는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우리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 이상의 것들을 나누어 줄 수 있습니다. 우리의 나눔을 통해 하나님의 축복이 수많은 사람들에게로 흘러가게 됩니다. 그리고 꼭 필요한 곳에 나누어주기 위하여 불필요한 곳에 우리의 자원을 허비하지 않도록 절제된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삶의 만족함을 얻고, 지치고 힘든 마음에 위로와 소망을 얻은 우리는 이제 다른 사람들을 끌어안아야 합니다. 우리를 미워하는 자들을 사랑하고, 다른 사람들의 고통과 아픔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지치고 힘들어하는 이 땅의 수많은 사람들을 품고, 그들이 기댈 수 있는 등이 되어주며, 그들의 위로와 소망이 되어주는 작은 예수가 되어야 합니다.
[출처] 38. 만족의 미학|작성자 유수
<출 16:13-20> 저녁에는 메추라기가 와서 진에 덮이고 아침에는 이슬이 진 사면에 있더니 14 그 이슬이 마른 후에 광야 지면에 작고 둥글며 서리같이 세미한 것이 있는지라 15 이스라엘 자손이 보고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여 서로 이르되 이것이 무엇이냐 하니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어 먹게 하신 양식이라 16 여호와께서 이같이 명하시기를 너희 각 사람의 식량대로 이것을 거둘지니 곧 너희 인수대로 매명에 한 오멜씩 취하되 각 사람이 그 장막에 있는 자들을 위하여 취할지니라 하셨느니라 17 이스라엘 자손이 그같이 하였더니 그 거둔 것이 많기도 하고 적기도 하나 18 오멜로 되어 본즉 많이 거둔 자도 남음이 없고 적게 거둔 자도 부족함이 없이 각기 식량대로 거두었더라 19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기를 아무든지 아침까지 그것을 남겨 두지 말라 하였으나 20 그들이 모세의 말을 청종치 아니하고 더러는 아침까지 두었더니 벌레가 생기고 냄새가 난지라 모세가 그들에게 노하니라
하나님께서는 애굽의 혹독한 노예생활로 고통스러워하던 이스라엘민족을 구원해 내시고, 약속하신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셨습니다. 그러나 가나안 땅을 앞에 두고 이스라엘민족은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함으로 인하여 40년이라는 긴 시간을 광야에서 생활하게 되었습니다. 광야는 황폐하여 버려진 땅으로써 곳곳에 사막이 놓여있고, 풀과 나무조차 제대로 자라지 않는 땅입니다. 그런 곳에서 식량과 물이 떨어지면, 더 이상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더군다나 수백만 명이 함께 움직여야 한다면, 아무리 충분한 식량과 물이 있다할지라도 선뜻 광야로 들어설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의 삶을 인도하시고 축복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과감하게 광야로 들어섰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40년간 저녁에는 메추라기가 진에 와서 덮이게 하심으로 고기를 먹이시고, 아침에는 만나를 내리심으로 일용할 양식을 삼게 했습니다. 반석을 명하여 물을 내심으로 그들이 목마르지 않도록 하셨습니다.
동일하게 하나님께서는 삶의 고통과 어려움으로 좌절하고 무너진 우리를 건져내어 모든 것이 풍성하고 아름다운 축복의 땅으로 인도하고자 우리에게 구원의 손길을 뻗어주셨습니다. 그러나 축복의 땅에 이르기 위해서는 광야를 통과해야 합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영원한 천국을 소망한다면, 우리는 우리를 책임지고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실 하나님의 손을 붙잡고 과감하게 광야로 들어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어떠한 고난과 역경 앞에서도 우리를 붙잡아주시고 채워주시는 하나님의 축복과 은혜들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처음 만나가 내리던 날, 하나님께서는 각자에게 필요한 만큼만 만나를 취하게 하셨고, 그것은 부족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다음날 아침까지 남겨두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 중에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내일을 위하여 남겨둔 자들이 있었지만, 다음날 아침 벌레가 생기고 냄새가 나서 먹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그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진노하셨습니다.
신앙의 삶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오늘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내일의 일은 내일 염려하고, 오늘 먹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일용할 양식을 주시는 하나님께서 오늘 공급해 주신 것으로 오늘을 살고, 내일은 내일 공급해주시는 것으로 살아가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각자에게 필요한 만큼, 부족하지 않도록 채워주시는 하나님을 의지하여 만족하며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오늘보다 내일을 중요시함으로 인하여 실수하고 실패하며 무너져갑니다. 물론 미래를 준비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지나치게 염려하게 될 때, 그 염려로 인하여 오늘의 삶이 무너지게 됩니다. 미래를 준비한다는 명목으로 다른 사람들과 처절하게 경쟁하고, 내가 가진 것을 움켜쥡니다. 자신의 삶과 가족을 돌아보지 않고, 이웃을 돌아보지 않습니다. 필요 이상의 부, 필요 이상의 권력, 필요 이상의 명예를 취함으로 자신의 몫을 빼앗긴 많은 사람들을 추위와 배고픔으로 몰아넣고, 고통과 아픔가운데 놓이게 합니다. 이처럼 내일을 염려하는 자들로 인해 시간이 흐를수록 이 땅은 더 많은 고통과 더 많은 아픔 가운데 놓이게 됩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오늘을 소중하게 여겨야 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것들에 만족하고, 우리가 가진 것을 나눔으로써 우리의 가족과 이웃들을 기쁘게 해야 합니다. 오늘의 삶에 우리가 만족하고 기뻐한다면, 내일의 삶 역시 소망이 있고, 도전적인 삶이 되며, 변화를 이루는 삶이 됩니다. 오늘을 이루고, 오늘을 성공시키는 자만이 내일도 성공시킬 수 있고, 미래를 변화시켜나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늘에 만족하지 못하고, 오늘을 이루지 않으면서 막연히 내일만, 미래만을 좇아 살아간다면, 인류의 역사는 미래가 있을 수 없고, 개인의 삶 역시 황폐하게 됩니다.
<잠 30:8-9> 곧 허탄한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 나로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내게 먹이시옵소서 9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적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
한 신앙인은 하나님께 자신을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며,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먹여달라고 간구하고 있습니다. 너무 부하면 교만하여져서 하나님을 부인할까 두렵고, 너무 가난하면 도적질하여 하나님을 부끄럽게 할까 두렵기 때문이라고 덧붙입니다. 이러한 삶이야말로 필요한 대로 채워주실 하나님으로 인하여 만족하는 삶,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어가는 지혜로운 삶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자녀들의 삶을 축복해주시고 더욱 풍성하게 하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의 필요한 대로 채워주시는 하나님으로 만족한다면, 우리는 너무 부하게 되지 않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즉, 우리가 필요한 것 이상의 것들은 다른 사람들을 위해 나누어줄 것입니다. 우리를 통하여 하나님의 축복이 수많은 사람들에게로 흘러들어가게 할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에게 필요한 것 이상의 것들을 취하게 되면, 수백 수천 명의 고픈 배를 채울 수 있는 자원이 나 한 사람만의 즐거움을 위하여 필요 없는 곳에 허비됩니다. 그러나 그것을 나눌 때, 그 자원은 세계 곳곳의 배고픈 자들을 먹이고, 병든 자들을 치료하며, 배움이 부족한 자들을 가르칠 것이며, 하나님의 교회들을 세워나갈 것입니다.
전쟁 직후 어려운 시기에 한 시골학교 선생님께서 점심시간이면 도시락을 싸오지 못하는 학생들에게 자신의 도시락을 나누어주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은 수돗물로 배를 채웠습니다. 우연히 이 모습을 본 학생들은 선생님의 사랑에 보답하기 위하여 더욱 열심히 공부했고, 나라를 부강하게 만드는 훌륭한 일꾼들로 성장하였습니다. 이처럼 자신의 삶에 만족한 자들은 다른 사람들을 돌아볼 수 있고, 그들의 필요를 채우기 위하여 선뜻 자신이 가진 것들을 나눌 수 있습니다. 또한 그 나눔을 통하여 많은 자들이 삶의 소망을 얻어 새로운 삶으로 변화될 수 있습니다.
새벽마다 쓰레기를 치우시는 분들에게 여름이면 아이스크림, 겨울이면 뜨거운 차를 대접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 자란 딸이 있었습니다. 성장하여 결혼을 하게 되었고, 그 또한 종종 거리를 청소하시는 분들에게 차를 대접했습니다. 어느 추운 겨울 날, 아이와 함께 대합실에 있을 때, 어린 아들이 뜨거운 커피 한잔을 뽑아서 역을 청소하고 계시는 아주머니께 갖다드리는 모습을 보면서 젊은 어머니는 자신의 모델이 되어준 친정어머니께 감사한 마음을 가졌습니다. 반면에 한 젊은 변호사는 자신에게 변호를 의뢰한 가난한 노파가 부득이한 상황에 처하여 단 몇 만 원을 빌려달라고 요청하는 것을 매정하게 거절합니다. 한 게으른 며느리는 가족의 행사에 뒤늦게 도착해서는 식사만 하고 돌아가 버립니다. 이처럼 작은 것조차 나누지 못하는 마음을 갖게 된 것은 이들이 자라오는 동안에 주어진 삶에 만족하는 모델, 나누고 헌신함으로 기뻐하는 삶의 모델들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최상의 만족 상태를 의미하는 만족의 미학은 세상의 부와 명예와 권력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통해 얻어집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의 마음이 만족할 때, 우리는 우리를 미워하는 자들을 사랑할 수 있고, 마음에 들지 않는 자들을 품을 수 있으며, 다른 사람들의 고통과 아픔을 위로할 수 있습니다. 또한 필요 이상의 것을 취하지 않는 삶, 필요 이상의 것들은 나누는 삶, 꼭 필요한 곳에 나누어주기 위해 불필요한 소비를 하지 않는 절제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러한 우리의 삶은 우리를 보고 자라는 자녀와 뒤따르는 세대들에게 아름다운 삶의 모델이 됩니다.
<출 22:25> 네가 만일 너와 함께한 나의 백성 중 가난한 자에게 돈을 꾸이거든 너는 그에게 채주같이 하지 말며 변리를 받지 말 것이며
가난한 자에게 돈을 빌려줄 경우, 우리는 그들에게 돈을 갚으라고 재촉하지 말고, 이자를 받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빌려줄 돈이 있다는 것은 이미 우리가 필요한 것 이상을 갖고 있는 부한 자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만족함을 얻었다면, 어렵고 힘들어서 우리에게 도움을 청하는 자들의 손을 부끄럽게 하지 말아야 할 뿐 아니라, 그들의 힘든 마음을 따뜻하게 위로하고 격려해 주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땅의 모든 고통을 품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셨습니다. 지치고 힘든 자들을 품어주셨고, 오늘 우리를 품어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마음속에 기쁨과 평강과 소망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 땅의 수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지치고 힘든 가운데서 어느 누구에게 기대어 울 수도, 그 마음을 토로할 수도 없어 고통스러워합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만족함을 얻은 우리가 그들을 안아주어야 합니다. 작은 예수가 되어 고통가운데 있는 수많은 자들의 위로가 되어주고, 기대어 울 수 있는 등이 되어주며, 그들의 소망이 되어주어야 합니다.
만족의 미학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만족하는 삶에서 얻어집니다. 각자에게 필요한 만큼, 부족하지 않도록 채워주시는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오늘의 삶에 만족하게 되고, 어떠한 고난과 역경 앞에서도 붙잡아주시고 채워주시는 은혜들을 경험하게 됩니다. 또한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시는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우리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 이상의 것들을 나누어 줄 수 있습니다. 우리의 나눔을 통해 하나님의 축복이 수많은 사람들에게로 흘러가게 됩니다. 그리고 꼭 필요한 곳에 나누어주기 위하여 불필요한 곳에 우리의 자원을 허비하지 않도록 절제된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삶의 만족함을 얻고, 지치고 힘든 마음에 위로와 소망을 얻은 우리는 이제 다른 사람들을 끌어안아야 합니다. 우리를 미워하는 자들을 사랑하고, 다른 사람들의 고통과 아픔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지치고 힘들어하는 이 땅의 수많은 사람들을 품고, 그들이 기댈 수 있는 등이 되어주며, 그들의 위로와 소망이 되어주는 작은 예수가 되어야 합니다.
[출처] 38. 만족의 미학|작성자 유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