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순종의 삶

작성자
표재근
작성일
2018-04-02 15:32
조회
2663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 온전히 서기를 원하시고, 우리를 통하여 이 땅에 계획하신 하나님의 일들을 이루어가기 원하십니다. 이를 위해 우리를 부르시고 새로운 삶으로 인도하십니다. 우리가 온전히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을 살아간다면, 그 순종하는 삶 자체가 이 땅에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는 것이 됩니다. 우리의 이웃을 섬기고, 나라와 민족을 섬김으로써 하나님의 역사들을 이루어가게 됩니다. 그러나 먼저 우리에게 하나님을 향한 온전한 순종이 없다면, 올바른 섬김의 삶은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변화됨이 없이는 나를 낮추어 복종시킬 수 없고,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을 높이거나, 나를 희생할 수 없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입니다.

참된 순종의 삶은 하나님과 밀접한 관계를 맺을 때 가능합니다. 오늘 우리가 온전히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못하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살지 못하는 불완전한 순종의 삶 가운데 있는 것은, 우리가 불완전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속적으로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하나님과 밀접하게 동행하는 신앙인들은 하나님께서 어떠한 길로 이끄실지라도 거부하거나 원망하지 않습니다. 때로 고난의 길로 인도하실지라도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갑니다. 이것은 하나님과의 밀접한 관계를 맺어가는 과정에서 자신의 이기심과 욕심이 무너지고 자아가 깨어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사랑과 화평을 통해 화목케 하는 성품으로 변화되었기 때문입니다.

<롬 11:16> 제사하는 처음 익은 곡식 가루가 거룩한즉 떡덩이도 그러하고 뿌리가 거룩한즉 가지도 그러하니라

처음의 곡식가루가 거룩하면 그 가루로 만든 떡도 당연히 거룩합니다. 뿌리가 거룩하면 그 뿌리에서 나온 가지 또한 당연히 거룩합니다. 이처럼 무엇이든지 근원이 중요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근원은 곧 하나님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신을 변화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무릎을 꿇는 영적인 삶을 살아가는 자들은 당연히 순종과 섬김의 열매를 맺게 되어 있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우리가 순종과 섬김의 삶을 살지 못한다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잘못되어 있기 때문임을 의미합니다.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성품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비록 방언을 하고 병을 치유하며 환상을 본다할지라도, 예수님의 성품이 우리의 삶에서 드러나지 않는다면 아무런 유익이 없습니다. 예수님의 성품은 순종과 섬김을 통하여 드러났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형제를 사랑하고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여전히 미워하는 마음을 품고 있지는 않습니까? 물질과 명예에 대한 욕심을 버리라는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여전히 물질을 좇고, 여전히 자신을 높이고 있지는 않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구제를 강조하며 선교를 외칩니다. 그러나 과연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고 그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자들이 알지도 못하는 자들을 위하여 자신의 목숨을 버리고, 자신의 가진 것들을 나누어줄 수 있겠습니까? 자신이 깨어지지 아니한 자가 진정으로 이웃을 섬길 수 있겠습니까?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서도 여전히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책임과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고, 이 세상을 변화시키기 못하는 연약한 삶 가운데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무엇보다도 순종의 삶을 원하십니다. 우리가 순종할 때, 이 세상을 변화시키시는 하나님의 사역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작은 물고기 두 마리와 떡 다섯 개를 내어놓는 순종을 통하여, 오천 명을 먹이는 역사를 이룰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기업과 사업장을 맡은 청지기로서, 소외된 자들을 돌아보고 그들을 이끌어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로서, 이 나라와 이 땅에 정의를 물같이, 공의를 하수같이 흐르게 할 수 있습니다. 순종을 통하여 우리의 삶이 변화되었기 때문입니다.

<히 5:8>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이루기 위해 고난을 통하여 순종함을 배우셨습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들도 하나님께 온전히 쓰임받기 위해 고난의 과정을 통과하게 됩니다. 고난을 통하여 우리가 온전히 변화될 때,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자의 삶을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고난을 두려워합니다. 고난을 통하여 우리의 자아를 깨뜨리시고, 온전히 순종하는 삶으로 변화시키고자 하는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합니다. 고난의 아픔만을 바라보고, 그 고난을 회피합니다. 순종을 배우려 하지 않습니다. 여전히 예수님의 성품으로 변화되지 못하고,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지 못하는 연약한 삶에 머물러 있습니다.

<삿 6:14> 여호와께서 그를 돌아보아 가라사대 너는 이 네 힘을 의지하고 가서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라 내가 너를 보낸 것이 아니냐

십삼만 오천 명이라는 엄청난 미디안의 군대에 비해 기드온의 군사 삼백 명은 감히 싸울 것을 생각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작습니다. 또한 기드온은 이스라엘의 지파 중에서 가장 연약한 지파의 가장 작은 집안 출신이었고, 그 중에서도 가장 작은 자였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자신을 불러 미디안으로부터 이스라엘을 구원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기드온은 자신이 무엇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기드온의 힘이 미약함을 아심에도 불구하고 네 힘, 즉 기드온 자신의 힘을 의지하고 가서 이스라엘을 구원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 이유를 내가 너를 보냈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미약하고 부족한 기드온과 함께 하심으로, 거대한 미디안 군대를 깨뜨리고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여주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이 바로 기드온의 힘이었고 이 힘을 의지하여 순종함으로 나아갔을 때, 십삼만 오천 명의 대군은 기드온과 삼백 명의 군사 앞에서 전멸했습니다.

동일하게 오늘 우리의 모습은 기드온처럼 작고 연약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라고 명하실 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의지하여 순종함으로 나아간다면, 우리는 우리의 힘을 넘어서서 크고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들을 감당해낼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믿음을 가지고 환경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 환경 위에 역사하실 분은 우리가 아니라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통하여 이 땅에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고자 우리를 순종을 위한 훈련 가운데 두십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연단의 과정에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연단의 고통에서 더욱 하나님 앞에 나와 무릎을 꿇을 때, 우리는 순종함을 배워 하나님의 역사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하나님을 멀리하고 세상을 좇아간다면, 우리의 삶에는 끊이지 않는 고통과 무너짐이 있을 것입니다.

지속적으로 하나님께 나아와 무릎 꿇고 기도한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우리의 모든 의지를 하나님께 복종시켜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런 무릎 꿇음을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께서 어떠한 길로 인도하실지라도 순종할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주관하심으로 지금은 부족하고 힘이 없을지라도, 우리 위에 역사하실 하나님의 힘과 능력은 측량할 수 없게 됩니다.

우리가 참된 순종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하나님과 밀접한 관계를 맺는 온전한 신앙생활을 해나가야 합니다. 삶의 근원이 되는 하나님께 지속적으로 무릎 꿇으며 동행하는 삶을 살아갈 때, 우리의 이기심과 욕심은 무너지고 자아가 깨어지게 됩니다. 예수님의 성품을 닮아 순종과 섬김의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참된 순종은 고난을 통하여 배우게 됩니다. 힘들고 고통스러울지라도 더욱 더 하나님께 나아갈 때 우리는 온전히 순종하는 자로 변화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순종을 통하여 이 땅에 하나님의 역사들을 이루십니다. 비록 우리는 힘이 없고 연약할지라도,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힘과 능력을 의지하여 순종하며 나아갈 때, 이 땅에 하나님의 비전이 이루어지고 수많은 사람들이 소망과 기쁨을 얻고 변화의 삶으로 나아올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