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과 하나님 확신

작성자
표재근
작성일
2019-07-03 10:11
조회
1880
우리는 하나님과의 동행을 통하여 위기의 상황에서 도우시는 하나님, 질병을 치유하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또한 일상생활에서 우리의 인격을 변화시키고,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고 포용하는 삶으로 변화시키고자 성령의 감동과 양심의 가책 등을 통해 우리를 이끄시는 하나님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역사를 직접 체험할 때, 우리의 마음에 하나님에 대한 확고한 신뢰가 형성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역사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확신은 우리의 모든 생각과 행동을 하나님 중심적으로 변화시켜갑니다. 어떠한 어려움과 고통이 온다할지라도 실망하거나 좌절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소망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우리의 삶으로 가져오게 합니다.

<눅 7:1-10> 예수께서 모든 말씀을 백성에게 들려 주시기를 마치신 후에 가버나움으로 들어가시니라 2 어떤 백부장의 사랑하는 종이 병들어 죽게 되었더니 3 예수의 소문을 듣고 유대인의 장로 몇을 보내어 오셔서 그 종을 구원하시기를 청한지라 4 이에 저희가 예수께 나아와 간절히 구하여 가로되 이 일을 하시는 것이 이 사람에게는 합당하니이다 5 저가 우리 민족을 사랑하고 또한 우리를 위하여 회당을 지었나이다 하니 6 예수께서 함께 가실새 이에 그 집이 멀지 아니하여 백부장이 벗들을 보내어 가로되 주여 수고하시지 마옵소서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7 그러므로 내가 주께 나아가기도 감당치 못할 줄을 알았나이다 말씀만 하사 내 하인을 낫게 하소서 8 저도 남의 수하에 든 사람이며 제 아래에도 군병이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제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 9 예수께서 들으시고 저를 기이히 여겨 돌이키사 좇는 무리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은 만나 보지 못하였노라 하시더라 10 보내었던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가 보매 종이 이미 강건하여졌더라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하나님의 역사를 확신한 백부장의 믿음은 예수님조차 놀라게 만들었습니다. 자신의 사랑하는 종이 병이 들자, 백부장은 예수님께서 치유해주시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죄인인 자신의 집에 예수님께서 들어오심을 감당치 못하니 단지 말씀만으로 자신의 종을 낫게 해달라고 간청하였습니다. 이 백부장은 세상에서 백부장인 자신의 권위와 말의 힘에 비추어 예수님의 크신 권위를 깨닫고 말씀만으로도 자신의 종을 낫게 하실 능력을 확신한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을 신앙하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우리는 과연 ‘말씀만 하사 내 하인을 낫게 하소서’와 같은 신앙의 고백을 할 수 있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어려움과 고통 가운데 있을 때, 하나님께서 능히 이루실 것을 믿고 그 말씀에 따라 우리의 삶을 움직여가고 있는가 돌아보아야 합니다. 우리에게 살아계신 하나님에 대한 확신함이 있다면, 우리는 어떠한 환경에서도 그 말씀의 능력을 의지하여 담대하게 나아갈 수 있습니다.

특이한 것은 백부장도 아니고, 백부장의 종이 병이 들었는데 유대인의 장로들이 예수께 나아와 치료해주실 것을 간청했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 백부장에게 역사해주시는 것이 합당하다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사실 백부장은 이방인이었고 하나님을 믿는 자도 아니었기 때문에 굳이 예수님께서 역사해주실 필요는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방인이면서도 이스라엘 민족을 사랑하는 백부장의 마음과 이스라엘 사람들을 위하여 회당까지 지을 정도의 선한 행동들이 유대 장로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입니다.

동일하게 우리가 어려움과 곤경에 처해있을 때, 하나님께 나아가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의 역사를 간청해줄 자들이 과연 우리 주위에 있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역사해주시는 것이 합당하다고 간청해줄 만큼 우리가 아름다운 삶의 열매들을 맺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한분이 암 진단을 받고 3주후에 수술을 하기로 했습니다. 그러자 주위의 많은 분들이 그를 위해 연속적으로 금식을 하며 끊임없이 중보기도를 하셨습니다. 그리고 수술을 하기 위해 재검사를 했을 때, 놀랍게도 암이 깨끗하게 사라진 기적을 경험했습니다. 한 장로님이 목사님께 암 말기의 진단을 받아 죽음을 2주 앞둔 자신의 누님을 위하여 기도해달라는 부탁을 했습니다. 그러자 목사님은 자신의 교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매일 심방하여 말씀을 통하여 소망을 불어넣어주고 안수를 하며 하나님의 역사를 간구하였습니다. 결국 그 누님은 뜨거운 하나님의 역사와 사랑을 체험하고 건강을 되찾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난 이면에는 하나님의 역사가 주어지는 것이 합당한 백부장과 같은 삶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다른 이들을 위해 헌신하는 삶을 살아가는 자였기에 주위의 모든 자들이 그를 위해 금식하며 하나님의 역사를 간청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해, 교회를 위해 헌신하며 많은 성도들의 모범이 되는 삶을 살아온 장로님이었기에 단 한 번의 기도부탁에도 목회자가 매일 심방하며 힘을 다하여 하나님의 역사를 간구한 것입니다.

또한 과거 모든 것이 부족하고 어려웠던 시절, 수많은 고난과 핍박 속에서도 신앙을 지키기 위해 몸부림쳤던 자들이 있습니다. 이제 그들의 자녀들이 성장해나가는 모습에서 풍성한 하나님의 축복이 함께 함을 볼 수 있습니다. 백부장과 같은 부모의 삶이 하나님께서 그 자녀들을 축복하지 않을 수 없을 만큼 소중한 신앙의 유산이 된 것입니다.

이처럼 오늘 우리의 삶, 오늘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 역사하실 수 있는 근거가 됩니다. 오늘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과 동행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역사가 주어지는 것이 합당한 삶을 살아가게 되고, 선한 행실로 많은 사람들에게 칭송을 받는 아름다운 신앙의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또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께 간청하는 기도의 동역자들이 우리 주위에 모여들게 되고, 우리를 도와 하나님의 크신 역사들을 이루어가게 될 것입니다.

<막 9:19-27> 대답하여 가라사대 믿음이 없는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를 참으리요 그를 내게로 데려오라 하시매 20 이에 데리고 오니 귀신이 예수를 보고 곧 그 아이로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는지라 저가 땅에 엎드러져 굴며 거품을 흘리더라 21 예수께서 그 아비에게 물으시되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느냐하시니 가로되 어릴 때부터니이다 22 귀신이 저를 죽이려고 불과 물에 자주 던졌나이다 그러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 주옵소서 23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24 곧 그 아이의 아비가 소리를 질러 가로되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 하더라 25 예수께서 무리의 달려 모이는 것을 보시고 그 더러운 귀신을 꾸짖어 가라사대 벙어리 되고 귀먹은 귀신아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말라 하시매 26 귀신이 소리지르며 아이로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고 나가니 그 아이가 죽은 것같이 되어 많은 사람이 말하기를 죽었다 하나 27 예수께서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이에 일어서니라

한 아이의 아버지가 귀신 들린 아들을 예수님께 데리고 나왔습니다. 예수님께서 세 명의 제자들을 데리고 변화산에 올라가신 사이에 남아 있는 제자들에게 아이를 데리고 왔지만, 제자들이 고치지 못했으니 예수님께서 고쳐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믿음이 없는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를 참으리요’라고 책망하셨습니다. 수많은 기적과 이적을 베풀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하나님에 대한 확신을 갖지 못함을 한탄하셨습니다.

이 아버지의 모습이 바로 오늘 우리의 모습과 동일합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여러 성도들의 삶, 또한 우리의 삶에 주어지는 하나님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하나님에 대한 확신을 갖지 못합니다. 동행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못하고, 믿음의 기도를 드리지 못하며, 담대하게 믿음으로 행하지 못합니다. 스스로 하나님께 나아가지 못하고 삶의 변화를 이루지 못합니다. 여전히 작은 어려움과 문제 앞에서도 쉽게 좌절하며 다른 성도, 또는 목회자의 믿음만을 의지합니다.

아이의 아버지는 예수님 앞에서조차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도와달라는 말로 자신의 믿음 없음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가 정말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확신했다면, 이처럼 무기력한 불신앙의 모습을 갖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러한 불신앙 앞에 예수님께서는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고 분노하시며 책망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음을 말씀하시며, 하나님의 역사에 대한 믿음을 가질 것을 촉구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왔다면, 하나님께서 역사해주시기를 원한다면, 우리의 생각, 우리의 뜻을 다 버려야 합니다. 우리를 짓누르는 두려움과 불안, 의심들을 깨뜨려야 합니다. 오직 살아계시는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이루실 수 있음을 확신하며 믿음의 간구를 드림으로써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함이 없는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해야 합니다.

하루하루 하나님과의 동행을 통해 우리는 우리의 모든 삶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확신을 배워야 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확신할 때, 우리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소망을 잃지 않게 되고, 하나님의 역사를 우리의 삶으로 가져올 수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아갈 때, 우리는 하나님의 역사가 주어지기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게 되고, 선한 행실로 많은 사람들에게 칭송을 받게 됩니다. 또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께 간청하는 기도의 동역자들과 함께 이 땅에 하나님의 크신 역사들을 이루어가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