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적인 기도

작성자
표재근
작성일
2018-10-22 20:25
조회
2473
아주 작은 겨자씨 하나가 사막에 심겨지게 되면 이 작은 겨자씨는 3-5M 정도의 큰 나무로 자랍니다. 그늘도, 쉴 곳도 없는 사막 한가운데서 이 겨자나무는 수많은 동물들의 쉼터가 되고 안식처가 됩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은 이 겨자씨와 같은 삶입니다. 세상 한가운데 심겨져 하나님의 역사를 드러냄을 통해 영적, 육적으로 갈급한 자들의 필요를 채워주고, 피난처와 안식처가 되는 삶입니다.

또한 앞일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 많은 사람들이 실의와 좌절로 무너져갈 때,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들은 다가오는 위기를 제2의 전환점으로 삼고 인생을 새롭게 만들어갑니다.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 위기의 상황에서 참 가치를 발휘하여 고통의 삶을 이기고 변화를 이루어가는 능력이 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신앙인들에게 위기는 더욱 간절히 하나님을 찾고 의지하게 함으로써 복되고 아름다운 삶으로 이끌어가는 기회가 됩니다.

이처럼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들은 수많은 자들에게 영적, 육적 열매를 나누어주며 어떠한 상황에서도 새로운 변화를 이루어내는 능력을 소유하게 됩니다. 특별히 우리가 지속적인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과 동행할 때, 우리는 더 많은 변화와 역사들을 이루어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내가 동반되지 않는 삶과 기도는 어떠한 변화도 이루어낼 수 없습니다.

1. 소경의 인내

<요 9:6-11> 이 말씀을 하시고 땅에 침을 뱉아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시고 7 이르시되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하시니 (실로암은 번역하면 보냄을 받았다는 뜻이라) 이에 가서 씻고 밝은 눈으로 왔더라 8 이웃 사람들과 및 전에 저가 걸인인 것을 보았던 사람들이 가로되 이는 앉아서 구걸하던 자가 아니냐 9 혹은 그 사람이라 하며 혹은 아니라 그와 비슷하다 하거늘 제 말은 내가 그로라 하니 10 저희가 묻되 그러면 네 눈이 어떻게 떠졌느냐 11 대답하되 예수라 하는 그 사람이 진흙을 이겨 내 눈에 바르고 나더러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 하기에 가서 씻었더니 보게 되었노라

한 소경이 눈을 뜨게 되는 역사를 통하여 우리는 예수님의 마음과 인내하는 소경의 믿음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소경은 날 때부터 소경이었기 때문에 오랜 시간 동안 걸인의 삶을 살아왔습니다. 따라서 행색이 더럽고 남루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멸시와 거리낌을 받았을 것이고, 어느 누구도 그의 삶에 관심을 갖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 소경에게 예수님이 친히 다가가 진흙을 이겨 보이지 않는 소경의 눈에 발라주시고,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에게 다가와 그의 아픔을 어루만지신 예수님에게 이 소경의 마음은 감동되었을 것이고, 예수님의 말씀대로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면 눈이 떠지리라는 믿음을 소유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이처럼 변화는 고통가운데 있는 자들과 접촉될 때 일어납니다. 고통하는 자들에게 관심을 갖고 다가가 그들의 아픔을 어루만질 때, 그들에게는 하나님을 볼 수 있는 마음이 생겨나고,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소망의 눈이 떠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며칠을 굶은 걸인에게 한 여인이 자신의 빵을 건네며 희망을 잃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했을 때, 이 청년은 자신에게도 희망이 있을 수 있음에 감격하여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응급의료물품을 수송하는 항공회사를 설립하여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구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한 목회자가 욕창이 나서 진물이 흐르는 성도의 손을 잡고 기도했을 때, 곧 진물이 마르고 깨끗하게 치유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한센병환자들을 치료하기 위해 많은 목회자와 의사들이 그들과 더불어 먹고 생활했을 때, 그들에게 변화와 치유의 역사들이 일어났습니다. 이것이 오늘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이 가져야할 예수님의 마음이고 신앙의 모습입니다.

예수님은 소경의 믿음을 시험하셨습니다. 그 즉시 눈을 뜨게 하실 수도 있었지만, 실로암 못까지 가서 눈을 씻으라고 하셨습니다. 이 소경은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면 눈이 떠지리라는 믿음은 가졌지만, 보이지 않는 눈으로 실로암 못까지 간다는 것은 매우 힘들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가는 동안에 과연 눈이 떠질 수 있을까에 대한 많은 의심과 포기하고 싶은 마음의 요동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끝까지 인내하며 실로암 못에 다다라 눈을 씻었을 때, 그는 예수님의 말씀대로 눈이 떠지는 역사를 경험했습니다.

이 소경처럼 오늘 우리가 하나님과 동행한다면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역사가 우리에게 주어질 때까지 인내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삶에 역사하기 원하시고, 이미 역사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기도의 응답이 주어질 때까지,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때까지 인내하며 나아갈 때, 살아있는 하나님의 능력과 역사들이 우리의 삶에 놀랍게 채워지게 됩니다.

2. 가나안 여인의 인내

<마 15:22-28> 가나안 여자 하나가 그 지경에서 나와서 소리질러 가로되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히 귀신들렸나이다 하되 23 예수는 한 말씀도 대답지 아니하시니 제자들이 와서 청하여 말하되 그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오니 보내소서 24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하신대 25 여자가 와서 예수께 절하며 가로되 주여 저를 도우소서 26 대답하여 가라사대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27 여자가 가로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니 28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시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각종 질병으로 고통받는 자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그들을 치유해주신 예수님께서 유독 이가나안 여인에게는 매몰차게 반응하셨습니다. 귀신 들린 딸을 위해 애타게 간구하는 여인의 부르짖음에 한 말씀도 대꾸하지 않으시고, 이방인들을 개에게 비유하며 거절하실 정도로 여인의 자존심을 무너뜨리셨습니다. 이 여인에게 구원받을 만한 믿음이 있는지, 예수님께서 능히 역사하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는지 시험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이 여인은 예수님의 멸시와 조롱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개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는 것처럼 이방인인 자신에게도 예수님의 능력을 베풀어달라고 간구하였습니다. 이러한 여인의 인내와 간절함에 예수님께서는 그의 믿음을 칭찬하시고 그 마음의 소원대로 딸을 치유해 주셨습니다.

동일하게 우리의 삶에서도 하나님께서 응답을 지연하시며 우리의 믿음을 시험하실 때가 있습니다. 그 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이 역사할 때까지 끝까지 하나님을 붙잡고 나가는 것입니다. 목회자라면 성도의 문제가 해결되고 그 삶에 하나님의 역사가 주어지도록 끝없이 하나님을 붙잡고 매달려야 합니다. 만일 자녀가 하나님께 범죄했다면, 그 자녀가 하나님께 돌아올 것을 위해 부모가 금식하며 눈물로 기도해야 합니다. 만일 남편이 잘못되었다면 남편이 올바른 신앙의 삶으로 돌아올 것을 위해 부인이 하나님을 붙잡고 중보해야 합니다. 이 가나안 여인이 자신의 딸이 고침받을 때까지 인내하며 예수님께 매달린 것처럼, 오늘 우리의 문제들이 해결되고 변화될 때까지 인내하며 지속적인 기도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한두 번 기도해보고 응답되지 않으면 쉽게 포기해버립니다. 많은 계획들을 세우지만 한두 번 시도해보고는 좌절해버립니다. 이로 인해 신앙은 있지만,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지 못하고, 꿈은 있지만 이루지 못합니다. 인내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비록 연약하고 보잘 것 없어보일지라도 인내하며 노력하는 자의 미래는 아름답고 풍성할 것입니다. 지금은 비록 하나님께서 침묵하시는 것 같고 외면하시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인내하며 기도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크고 놀라운 역사들이 주어질 것입니다.

3. 과부의 인내와 지속성

<눅 18:1-7>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될 것을 저희에게 비유로 하여 2 가라사대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관이 있는데 3 그 도시에 한 과부가 있어 자주 그에게 가서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 하되 4 그가 얼마 동안 듣지 아니하다가 후에 속으로 생각하되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고 사람을 무시하나 5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였느니라 6 주께서 또 가라사대 불의한 재판관의 말한 것을 들으라 7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저희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관이 있었습니다. 그에게 가난하고 힘없는 과부의 원한은 관심의 대상조차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 과부는 재판관의 무시에도 좌절하지 않고 자주 찾아가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였습니다. 결국 이 재판관은 이 과부의 억울함을 풀어주지 않으면 늘 자신을 괴롭게 할 것임을 알고 그 번거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과부의 원한을 풀어주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가 이 과부의 간청과 같아야 함을 말씀하셨습니다. 불의한 재판관조차 과부의 자주 번거롭게 함으로 그 원한을 풀어주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자녀들이 밤낮 부르짖으며 구할 때, 그들의 기도에 신속히 응답해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과부의 인내와 지속성, 즉 우리에게 하나님의 역사가 주어질 때까지 항상 기도하며 낙망하지 않는 기도의 삶을 소유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과의 동행을 통해 우리의 삶에 풍성한 하나님의 역사를 가져오고, 이 시대에 수많은 자들을 영적, 육적으로 먹이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기도의 삶으로 하나님과 동행해야 합니다.

지속적인 기도의 삶은 곧 인내의 삶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눈을 뜨기 위해 실로암 못까지 걸어가는 소경의 인내, 귀신들린 딸을 구하기 위해 예수님께 멸시와 냉대를 받으면서도 그 역사를 간구했던 가나안 여인의 인내, 불의한 재판관까지도 들어줄 수밖에 없게 만든 과부의 지치지 않는 인내와 지속성을 소유해야 합니다. 인내함으로 항상 기도하며 낙망하지 않을 때, 우리의 삶에는 하나님의 풍성한 역사들이 주어지고, 수많은 자들이 우리를 통하여 쉼을 얻고 안식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