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과 정한 시간

작성자
표재근
작성일
2022-09-16 19:12
조회
323
신앙의 초기에는 우리 안에 무엇을 담을 것인가가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느끼고, 하나님의 역사를 믿는 믿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죄사함과 구원 등에 집중하여 신앙의 기초를 다져나가야 합니다. 그러나 어느 정도 신앙이 성장한 이후에는 담은 것들을 지킬 수 있고, 제대로 움직여지게 할 수 있는 그릇을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좋은 물을 맑은 유리잔에 담아두면, 물은 더 빛나 보이고 먹기에도 좋습니다. 하지만 종이컵에 담아두게 되면, 시간이 흐르면서 종이가 녹고 구멍이 나서 다 흘러나가 버립니다. 새 포도주를 헌 가죽부대에 담아두게 되면, 새 포도주의 강력한 발효로 인해 부대가 터져버리고 포도주도 쏟아져버립니다. 동일하게 우리 안에 하나님의 강력한 은혜와 능력에 대한 믿음이 있다할지라도 그것을 감당하고 지속적으로 살아 움직여지게 하는 그릇에 변화를 주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역사는 현실화될 수 없습니다.

영적성숙은 우리의 삶 하나하나를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쉽게 우리의 삶을 무너지게 하던 과거의 습성들을 끊어냄으로써 온전한 삶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헌 가죽부대였던 우리의 삶을 새 가죽부대의 삶으로 변화시키는 것이며, 작은 우리의 그릇을 두드리고 잡아당겨서 크고 넓은 그릇으로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과하게 되면, 이 땅의 삶을 살아가는 동안 어떠한 고통과 어려움이 다가온다 할지라도 우리 안에 계신 하나님을 의지하여 견디게 되고 이기게 됩니다. 그러나 여전히 예수님 믿기 이전의 삶, 헌 가죽부대의 삶을 지속한다면, 우리는 그 고통과 어려움 앞에서 쉽게 좌절하고 무너지게 됩니다.

유럽의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는 축구입니다. 그리고 해마다 각 나라의 1위부터 4위까지의 팀들이 모여 챔피언을 가립니다. 얼마 전 챔피언리그 결승전 도중 한 팀에서 선수를 교체했습니다. 이때, 교체당한 선수가 돌아와 싱긋 웃으며 감독의 등을 툭툭 두드리는 모습 속에서 선수와 감독사이의 신뢰가 엿보였습니다. 역시 몇 분 뒤에 이 팀은 결승골을 넣어 챔피언이 되었습니다. 전 세계가 지켜보고 있는 큰 경기에서 교체당하는 것은 실망스러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감독이 어떠한 결정을 하던 그것이 팀을 위한 가장 좋은 결정임을 믿고, 그 결정에 기꺼이 따르는 신뢰가 승리의 밑바탕이 된 것입니다.

동일하게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도 신뢰가 형성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가장 아름답고 선한 삶으로 인도하실 것을 믿고, 하나님께서 제시하시는 길로 걸어가야 합니다. 그러할 때, 하나님 역시 우리를 믿음직하게 여기시고 우리의 삶 가운데 역사하십니다. 어떠한 위협과 문제가운데 있을지라도 그 상황을 뒤집으시고 새로운 변화들을 이루십니다.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고 선포하신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세상에 대하여 승리를 선포하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우리의 삶 깊숙이에서 움직이고 계시고 역사하고 계십니다. 우리를 치유하시고 구원하시며 온전하게 하시고 풍성하게 하시기 위해 우리를 인도하고 계십니다. 어떤 상황에서든 말씀을 통하여, 성령의 감동을 통하여, 기도 중에, 또는 사람과 환경을 통하여 많은 깨달음과 가르침을 주십니다. 그러나 우리와 하나님과의 신뢰가 형성되어 있지 않게 되면, 우리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를 수 없습니다. 우리의 눈과 귀와 마음이 닫혀 있어 깨달을 수 없고, 주어진 상황에 적절한 판단과 결정을 하지 못하여 방황하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삼상 3:8 여호와께서 세번째 사무엘을 부르시는지라 그가 일어나서 엘리에게로 가서 가로되 당신이 나를 부르셨기로 내가 여기 있나이다 엘리가 여호와께서 이 아이를 부르신 줄을 깨닫고

하나님께서 어린 사무엘을 부르셨을 때, 사무엘은 엘리제사장이 불렀다 생각하고 엘리에게 갔습니다. 이렇게 세 번을 반복하자 엘리제사장은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부르셨음을 깨닫고 사무엘에게 다시 하나님께서 부르실 때, 하나님께 응답하라고 조언했습니다. 이것이 곧 우리의 모습입니다. 어렸던 사무엘처럼 영적으로 성장하지 못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고 우리와 함께 하기 원하신다할지라도 듣지 못하고 깨닫지 못합니다.

사무엘이 더 이상 엘리제사장을 통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깨닫기 위해서는 성장해야 했습니다. 우리 역시 지속적으로 기도하고 말씀을 묵상하며 삶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구함으로써 영적으로 성장해가야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을 통과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여전히 하나님의 뜻을 깨달을 수 없어 하나님의 뜻과는 전혀 관계없는 그릇된 삶의 길로 들어서게 됩니다.

요 10:3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양치는 목동이 양들을 푸른 초장과 맑은 시냇물가로 인도하려 할 때, 문을 열고 각 양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 이끌어냅니다. 하나님 역시 각 사람의 하나님이 되셔서 각 사람에게 말씀하기 원하시고 인도하기 원하십니다. 하나님께는 각 사람이 가야할 길이 있고, 각 사람을 향한 뜻이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목회자의 하나님, 장로의 하나님이 아니라 바로 나의 하나님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를 영적성숙의 길로 인도하는 영적지도자들의 권면에 따르지 않습니다. 기도하지 않고 말씀을 묵상하지 않고, 헌신과 섬김의 삶을 싫어합니다. 그로 인해 여전히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고 여전히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이 되지 못합니다. 나를 인도하시는 하나님, 나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지 못함으로 인하여 다른 사람의 하나님만 바라보다가 삶이 흔들려갑니다.

행 3:1 제 구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쌔

한 앉은뱅이가 매일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기도하러 올라가던 베드로와 요한이 그를 보고, 금과 은은 없지만 자신에게 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노니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고 선포했습니다. 그 순간 앉은뱅이는 다리에 힘을 얻어 일어났고 뛰며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놀라운 역사의 첫머리를 제 구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갔다고 기록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실 때 중요한 것은 앉은뱅이가 일어난 것이 아니라, 베드로와 요한이 구시 기도 시간, 즉 정한 시간에 지속적으로 기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베드로와 요한의 믿음이 하나님의 은혜와 역사를 감당할 수 있는 그릇이 되었기에 그들을 통해 앉은뱅이를 일으키신 것입니다.

우리는 학생들에게 외국어나 그 외 다른 과목을 하루에 두 시간씩 일년 동안 공부한다면, 원하는 좋은 성적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합니다. 동일하게 우리가 매일 두 시간씩 일년 동안 기도하고 말씀을 묵상한다면, 우리의 신앙은 놀랍게 성장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기도하지 않습니다. 말씀을 묵상하지 않습니다. 정한 시간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지 않습니다.

자동차에 기름이 바닥나게 되면, 관속에 공기가 차게 됩니다. 이 공기가 이후에 들어오는 기름이 점화되는 부분까지 가는 것을 막아버려 기름을 넣어도 시동이 걸리지 않습니다. 자동차가 다시 움직이기 위해서는 관을 분해하여 들어찬 공기를 빼내야 합니다. 동일하게 우리 안에 하나님의 은혜가 없고 하나님의 역사가 없게 되면, 세상적인 가치관, 사단의 역사, 세상의 유혹 등이 우리 안에 들어와 삶을 무너뜨립니다. 이러한 삶은 단순히 부흥회나 예배에 참석해서 기도하고 은혜 받는다고 회복되지 않습니다. 먼저 우리의 내면에 자리 잡고 있는 나쁜 습성들을 빼내지 않으면 하나님의 은혜가 밀려들어올 수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의 은혜와 역사가 일정하게 지속되기 위해서는 정해진 시간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매일 일정한 시간에 기도를 하고, 말씀을 묵상해야 합니다. 이처럼 정한 시간으로 지속적으로 하나님께 나아갈 때, 우리는 하나님을 만나게 되고, 하나님과 신뢰의 관계를 형성하게 됩니다. 하나님에 대한 확신으로 어떠한 절망과 위기 가운데서도 견딜 수 있는 소망과 능력을 소유하게 됩니다.

행 10:9 이튿날 저희가 행하여 성에 가까이 갔을 그 때에 베드로가 기도하려고 지붕에 올라가니 시간은 제 육시더라(이때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

베드로는 어떠한 일로 어디를 가든지 시간을 정하여 하나님께 기도하는 삶을 지속했습니다. 이때 역시 복음을 전하는 일로 한 성에 갔던 베드로는 제 육시 기도를 하기 위해 지붕에 올라갔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우리 역시 시간을 정하여 지속적으로 하나님께 나아간다면,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우리의 삶에 주어지는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게 됩니다.

욜 1:14 너희는 금식일을 정하고 성회를 선포하여 장로들과 이 땅 모든 거민을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전으로 몰수히 모으고 여호와께 부르짖을찌어다

슥 8:19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사월의 금식과 오월의 금식과 칠월의 금식과 시월의 금식이 변하여 유다 족속에게 기쁨과 즐거움과 희락의 절기가 되리니 오직 너희는 진실과 화평을 사랑할찌니라

하나님께서는 위기에 처한 이스라엘민족을 향해 금식일을 정하고 성회를 선포하여 그 땅의 모든 거민들과 함께 여호와께 부르짖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스가랴는 사월의 금식과 오월의 금식과 칠월의 금식과 시월의 금식이 변하여 유다족속에게 기쁨과 즐거움과 희락의 절기가 될 것이라고 선포했습니다.

오늘 우리의 자녀가 속을 썩이고, 사업이 어렵고, 삶에 문제가 있다면, 기도해야 합니다. 금식을 선포하고 하나님께 부르짖어야 합니다. 그 과정에 따르는 고통들을 참고 견뎌야 합니다. 배고픔의 고통을 이겨야하고, 응답을 듣지 못하는 침묵의 시간들을 견뎌야합니다. 이처럼 정해진 시간으로 하나님께 나아감을 지속할 때, 우리는 주어진 상황에 대한 하나님의 뜻과 역사들을 이루어가게 됩니다.

바다 위를 걸어 다가오시는 예수님을 본 베드로는 자신도 바다 위를 걷고 싶다고 청했습니다. 그리고 그도 바다 위를 걸었습니다. 그러나 파도가 쳐서 예수님이 보이지 않자, 베드로는 믿음을 상실하고 물에 빠져 들어갔습니다. 이처럼 다급한 상황에서 믿음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그 믿음을 담아놓은 그릇을 준비해야 합니다. 열처녀가 신랑을 맞으러 갔을 때, 신랑이 더디 오자, 미련한 처녀들은 부족한 기름을 사러 마을로 내려갔습니다. 그 사이에 신랑이 오자 여분의 기름을 준비했던 슬기로운 처녀들은 신랑과 함께 잔치에 들어갔습니다. 지금 내게 은혜가 있고, 지금 내 삶이 평탄하다고 해서 안주해서는 안됩니다. 계속적으로 시간을 정하여 하나님께 나아감을 통해 어떠한 환경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영적인 성숙을 이루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우리의 삶 깊숙이에서 역사하고 계십니다. 우리를 온전하고 풍성한 삶으로 인도하시기 위해 어떠한 상황에서든 어떠한 방법으로든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인도하십니다. 그러나 우리의 눈과 귀와 마음이 닫혀 있으면 하나님의 뜻을 깨달을 수 없고, 우리와 하나님과의 신뢰가 형성되어 있지 않으면, 그 인도하심을 따를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깨닫고 그 길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하나님께 나아가는 정한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매일 일정한 시간에 기도를 하거나, 말씀을 묵상하거나 신앙서적을 읽는 등, 시간을 정하여 지속적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할 때, 우리는 각 사람을 향한 뜻과 계획을 가지시고 각 사람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더 이상 다른 사람의 하나님이 아닌 나의 하나님과 동행하게 됩니다. 때로 삶의 어려움과 문제가 있다면, 금식하면서까지 하나님께 부르짖어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주어지는 고통들을 이겨야 하고, 응답을 듣지 못하는 침묵의 시간들을 견뎌야 합니다. 그러할 때, 우리는 주어진 상황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게 됩니다.

이처럼 삶이 평안할 때나 어려울 때에도 변함없이 정한 시간으로 하나님께 나아갈 때,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고, 하나님의 역사들을 경험하게 됩니다. 주어진 상황마다 적절한 판단과 결정을 함으로써 삶이 흔들리지 않게 됩니다. 또한 하나님의 은혜와 역사를 감당할 수 있는 큰 그릇이 되어 이 땅 가운데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들을 이루어가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