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과 훈련

작성자
표재근
작성일
2022-09-10 11:07
조회
311
예수 그리스도에 의하여 우리는 구원을 받았습니다. 구원은 하나님과 함께 하기 위한 삶의 시작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으로 옮겨갈 때, 우리는 하나님 안에 있는 축복과 은혜들을 누리게 됩니다. 또한 우리의 삶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가정으로, 이웃으로, 사회로, 세계 곳곳으로 확장되어가게 됩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감격에만 머물 뿐,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으로 성장되지 않게 되면, 우리의 신앙은 형식화되어져서 더 이상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지 않는 한계 안에 갇히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의 삶은 구원받은 이후의 삶, 즉 구원에 합당한 삶으로 준비되어져야 하고, 우리의 신앙은 영적으로 끊임없이 성숙되어져야 합니다.

모든 부모들은 자녀가 학교에서든, 학원에서든, 교회에서든 혼나거나 상처받는 것을 싫어합니다. 그러나 자녀가 왜 혼나고 왜 상처받는가를 생각하지 않고 단지 혼나는 것에 대해서만 관심을 갖는다면, 아이는 더 나은 삶으로의 변화를 가질 수 없습니다. 마땅히 바뀌고 변화되어야할 것들이 바뀌지 못하고 변화되지 못함으로써 이후 성장하여 사회에 나아갔을 때, 쉽게 삶이 무너질 뿐 아니라, 가정과 사회에 악이 되는 문제들을 야기하게 됩니다. 따라서 아이가 올바로 훈련되기 위해서는 부모가 먼저 아이가 왜 혼났느냐가 아니라, 아이가 혼난 부분, 즉 아이의 어떠한 부분이 바뀌고 변화되야할 것인가에 눈을 떠야 합니다.

한 아이가 아침에 잘 일어나지도 못하고, 숙제나 준비물을 제대로 챙기지 못했습니다. 이로 인해 선생님께 꾸지람을 듣거나 아이들로부터 놀림 당하는 것이 싫은 어머니는 아침마다 아이를 깨우고, 준비물을 대신 챙기고, 아이를 몰아세웠습니다. 그렇게 삼년을 했지만, 아이는 나아지지 않았고 어머니는 지쳐갔습니다. 이 모습을 본 담임목회자가 아이가 스스로 할 수 있도록 두라고 충고했고, 그 충고에 따라 어머니는 더 이상 간섭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처음에는 지각하고 숙제나 준비물을 챙겨가지 못하여 꾸지람과 벌을 받던 아이가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자 스스로 일어나 등교준비를 하고, 꼼꼼히 숙제나 준비물들을 챙기는 모습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스스로 부딪침을 통해 잘못된 부분들에 대한 수정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아이가 상처받는 것이 두려워 부모가 모든 것을 다 해주었다면, 아이는 여전히 스스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연약한 존재에 머물러 있었을 것입니다.

신앙 역시 동일합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훈련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말씀을 통해 마음이 찔림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말씀을 통해 삶의 문제를 발견하고, 변화되어야겠다는 도전을 받았다면, 그냥 묻어두거나 지나치지 말아야 합니다. 그 부분을 바꾸고, 변화시켜나가야 합니다.

인간 스스로는 자신의 문제나 잘못된 부분들을 알 수 없습니다. 또한 세상의 친구들은 귀에 듣기 좋은 소리만 할 뿐, 다른 사람들의 문제나 잘못된 부분들에 관여하려 하지 않습니다. 결국 우리는 자신의 삶이 어떠한지를 모르는 상태에서 자신이 행하는 모든 것을 옳다고 생각하며 삶을 살아갑니다. 그로 인해 삶에 문제가 발생하고 주위의 사람들이 고통스러워함에도 불구하고 깨닫지 못합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으로서 올바른 삶을 살아가도록 하시기 위해 우리의 삶에 제동을 거십니다. 말씀과 성령의 감동, 영적 지도자의 권면과 환경 등을 통해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하십니다. 우리의 삶을 무너지게 하는 여러 가지 원인들을 깨닫게 하시고 변화의 삶으로 인도하십니다. 그러나 여전히 이러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거부하고 마땅히 수정되어야할 부분들을 수정해나가지 않게 되면, 엎어진 그릇이 빗물을 튕겨내듯이 부어지는 하나님의 은혜들을 우리 스스로 거부하고 제한하게 됩니다.

요 1:35-39 또 이튿날 요한이 자기 제자 중 두 사람과 함께 섰다가 36 예수의 다니심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37 두 제자가 그의 말을 듣고 예수를 좇거늘 38 예수께서 돌이켜 그 좇는 것을 보시고 물어 가라사대 무엇을 구하느냐 가로되 랍비여 어디 계시오니이까 하니 (랍비는 번역하면 선생이라) 39 예수께서 가라사대 와 보라 그러므로 저희가 가서 계신 데를 보고 그날 함께 거하니 때가 제 십 시쯤 되었더라

세례요한의 두 제자는 예수님을 가리켜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하는 요한의 말을 듣자 곧 예수님의 뒤를 좇았습니다. 돌이켜 그들의 좇는 것을 보신 예수님께서는 무엇을 구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구원은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일방적인 은혜이지만, 구원받은 이후에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는 말을 들은 세례요한의 제자처럼 우리의 삶을 돌이켜 예수님을 좇아가야 합니다. 그러할 때, ‘네가 무엇을 구하느냐’는 예수 그리스도의 응답을 듣게 되고, 그 응답은 우리의 삶에 하나님의 살아있는 역사를 가져오게 됩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예수님을 좇아가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향해 나아가지 않습니다. 그로 인하여 여전히 빈약한 삶, 여전히 많은 문제들로 인하여 막히고 엉키는 연약한 삶을 살아갑니다.

또한 예수님을 좇은 제자들은 무엇을 구하느냐는 예수님의 질문에 오히려 ‘어디 계시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자신의 필요와 욕심을 따라 구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과 함께 거하기를 원했습니다. 예수님으로부터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원했고, 하나님의 뜻을 알기 원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겪게 되는 죽음 앞에서 물질이나 명예, 권력 등은 더 이상 의미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질이 있는 사람은 더 많은 물질을 구하고, 명예가 있는 사람은 더 높은 명예를 구하며, 권력이 있는 사람은 더 강한 권력을 구합니다. 이처럼 세상에서 주어지는 것들은 우리로 하여금 더 많은 욕심과 집착을 갖게 만들고 결국 삶의 근본을 무너뜨립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주어지는 만족은 세상의 어떤 것으로도 얻을 수 없는 기쁨과 평안을 줍니다. 또한 주어진 상황에서 무엇을 보고 무엇을 판단하고 어떠한 삶을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명확한 방향을 설정해줌으로서 은혜와 소망이 넘치는 삶으로 인도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릇된 삶으로부터 돌이켜 예수님을 좇아야 합니다. 세상의 어떤 것보다도 예수님과 함께 거하기를 갈망해야 합니다. 세상의 삶을 초월하여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수 1:8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

출애굽사건을 비롯하여 40년간 이스라엘민족을 이끌어왔던 모세가 죽자, 이스라엘 민족은 마치 하나님께서 떠난 것처럼 불안해하며 요동했습니다. 또한 한 번도 이스라엘전체를 이끌고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보지 않은 여호수아 역시 모세의 뒤를 이어 지도자가 되었을 때, 두려웠을 것입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를 향해 율법책을 주야로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 대로 다 지켜 행하면 너의 길이 평탄하게 되고, 형통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떠한 고통, 어떠한 위기가 온다할지라도 너의 생각, 너의 판단이 아닌, 나의 말씀을 묵상하고, 그 말씀대로 행하여 나아간다면, 평탄케 하시고 형통케 하시는 역사를 이루어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주야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것은 세상의 환경과 흐름 속에서 하나님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을 놓칠 때, 우리는 세상적인 가치관과 사고에 사로잡혀 잘못된 판단과 선택으로 삶을 무너뜨려가게 됩니다. 반면에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의 판단과 선택의 근거로 삼아 삶을 움직여가게 되면, 우리는 어떠한 환경, 어떠한 흔들림 속에서도 반석과도 같이 굳건한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이처럼 묵상의 중요성은 기억함에 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신 말씀들을 가지고 기도하며, 하루의 삶 가운데 그 말씀으로 고백하고 선포하며 나아갈 때, 우리는 요동하는 환경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게 됩니다. 또한 그 말씀이 제시하시는 길로 걸어감에 따라 하나님의 역사가 끊이지 않는 은혜의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때로 그 길이 고난과 연단의 길이라 할지라도 말씀을 붙잡고 나아감으로써 형통케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들을 경험하게 됩니다.

초대 교부였던 ‘이그나티우스’는 영성수련에 대해 이렇게 가르쳤습니다. ‘성경의 말씀 안에 들어가 너의 오감을 사용하라. 성경인물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고, 음식 냄새를 맡으며, 그리스도의 옷을 만지고, 마지막 만찬의 포도주의 맛을 음미하라. 성경 안에서 그리스도와의 대화를 상상하라.’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하기 원하시고, 우리에게 역사하기 원하십니다. 그러나 들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자들에게 그 음성은 들리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믿지만, 구원받은 상태에만 머물러 있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역사는 주어지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 묵상해야 합니다. 묵상한 말씀들을 지켜 행해야 합니다. 묵상한 말씀 하나하나를 우리의 삶에 적용해나감으로써 다가오는 수많은 위기와 어려움, 고통과 연단들을 이겨내고, 놀라운 변화들을 이루어야 합니다.

묵상은 첫째, 죄로 왜곡된 것을 바로 잡게 합니다. 오늘 우리의 삶에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알지 못할 때,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게 되면, 틀어지고 잘못된 부분들을 발견하게 되고, 그 부분들을 바로잡아 나가게 됩니다. 둘째, 바로잡은 것을 튼튼하게 합니다.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말씀을 깨닫고 변화를 결단하지만, 그 말씀대로 움직여가지 못합니다. 또는 한다할지라도 오래가지 못합니다. 그러나 지속적인 묵상을 통해 말씀을 계속적으로 기억하게 되면, 바로잡은 것을 끝까지 지켜나가는 힘과 능력을 소유하게 됩니다. 셋째, 영향력 있는 삶이 되게 합니다. 묵상을 통해 바로잡은 것들을 든든히 다져나감으로써 삶이 변화됨과 동시에 다른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영향력을 미치게 됩니다.

묵상은 특별한 성도들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성도들이 매일매일 성경 읽는 것을 습관화해야 합니다. 하루에 잠깐이라도 시간을 내어 성경을 펴고 하나님의 도우심과 지혜를 구한 후, 많은 장수를 읽기보다는 천천히 자신의 삶을 비추어가며 읽어나가야 합니다. 그 말씀 가운데서 우리 자신의 모습을 발견해야 합니다. 영적인 성숙은 어느 날 갑자기, 우연히, 한 순간에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하루하루 지속적으로 행하는 묵상과 훈련이 쌓여져갈 때, 우리는 성숙한 삶으로 우뚝 서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우리에게 말씀하기 원하시고, 우리에게 역사하기 원하십니다. 말씀과 성령의 감동, 영적 지도자의 권면과 환경 등을 통해 우리로 하여금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하시고, 구원에 합당한 변화의 삶으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따르기 위해서는 먼저 그릇된 우리의 삶으로부터 돌이켜 하나님께로 나아가야 합니다. 세상의 어떤 것보다 하나님과 함께 거하기를 갈망해야 합니다. 또한 말씀을 묵상함으로써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하고, 묵상한 말씀들을 지켜 행함으로써 하나님의 역사를 가져와야 합니다.

묵상은 성경을 펴고 하나님의 도우심과 지혜를 구한 후, 천천히 자신의 삶을 비추어가며 읽어나가는 것입니다. 그 말씀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자신에게 주신 말씀들을 붙잡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루의 삶 가운데 그 말씀을 믿음으로 고백하며 선포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묵상은 첫째, 죄로 왜곡된 부분들을 바로잡게 합니다. 우리의 삶에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알지 못할 때, 하나님의 말씀은 죄로 왜곡된 부분들을 발견하게 하고, 그것들을 바로잡아가게 합니다. 둘째, 바로잡은 것을 튼튼하게 합니다. 지속적인 묵상을 통해 말씀을 기억하게 되면, 바로잡은 것들을 끝까지 지켜나갈 수 있는 힘과 능력을 얻게 됩니다. 셋째, 영향력 있는 삶이 되게 합니다. 바로잡은 것들을 든든히 다져나감으로써 우리의 삶이 변화됨과 동시에 수많은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영향력을 미치게 됩니다.

이처럼 지속적으로 말씀을 묵상하고, 묵상한 말씀 하나하나를 우리의 삶에 적용시켜 나갈 때, 우리는 수많은 위기와 어려움, 고통과 연단들을 이겨내고 영적인 성숙을 이루게 됩니다. 또한 말씀이 제시하시는 삶의 길로 걸어감에 따라 세상의 어떠한 흔들림 속에서도 평탄케 하시고 형통케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들을 경험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