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의 본질

작성자
표재근
작성일
2023-09-06 20:38
조회
267
신 29:19 이 저주의 말을 듣고도 심중에 스스로 위로하여 이르기를 내가 내 마음을 강퍅케 하여 젖은 것과 마른 것을 멸할지라도 평안하리라 할까 염려함이라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올바른 삶으로 나아가는 자들의 삶에 하나님의 축복과 역사가 넘치는 것은 당연하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특별히 징계하지 않으실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고 잘못된 삶으로 나아가는 자들의 삶에 시험과 고통, 좌절과 낙망이 오는 것 또한 당연하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올바른 삶의 길로 돌이키기 위해 끊임없이 말씀하시고 가르치신다. 그러나 어리석은 자들은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그럼으로써 오히려 자신의 삶이 평안하고 형통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에 어떤 어려움이 오고 위기가 와도 자신만은 괜찮을 것이라고 스스로 위로하며 이기적이고 탐욕적이며 세상과 벗하는 삶을 지속한다. 그러나 무너짐은 한 순간에 찾아온다. 어제까지도 큰 문제없고 지금까지도 괜찮았지만, 오늘 불현듯 위기가 나타난다. 그리고 그 삶의 무너짐은 감당하기 어렵다.

우리의 삶은 동아줄을 붙잡고 절벽을 오르는 것과 같다. 우리는 자신이 땀 흘리고 힘써서 동아줄을 붙잡고 올라가는 것만 생각할 뿐, 절벽 너머에서 우리의 동아줄을 붙잡고 버티고 계신 하나님은 보지 못한다. 그로 인해 자신의 힘, 자신의 능력으로 현재의 삶이 영위되고 복을 받는다는 교만함에 빠지게 된다. 우리가 잘못된 삶의 길에 있을지라도 큰 어려움이나 문제가 없는 것은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께서 크신 사랑과 인내로 우리를 붙들고 계시기 때문임을 망각한다. 그러나 우리의 지속적인 불순종과 죄악으로 인해 하나님께서 손을 놓으시는 순간, 우리의 삶은 고통과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된다.

최근 인터넷이 활성화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사회적 이슈에 대한 자신의 의견이나 판단을 공개한다. 그 가운데서 우리는 인간이 얼마나 연약하고 분별력이 없는가를 발견하게 된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억울한 일을 당했다고 호소하면, 잘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도 가해자로 여겨지는 자를 비판하는 글들을 수없이 올린다. 그러다가 숨겨졌던 사실들이 하나둘씩 공개되면, 방향을 바꾸어 피해자로 여겼던 처음사람에 대한 비방과 공격의 글들을 수없이 올린다.

이처럼 이 얘기를 들으면 이게 옳은 것 같고, 저 얘기를 들으면 저 얘기가 옳은 것 같아 우왕좌왕 움직이는 것이 인간이다. 그러한 우리가 하나님에 의해 분별력을 얻고 올바른 삶으로 인도함 받을 수 있다는 자체가 큰 축복이다. 세상 사람들이 분별하지 못하여 이리저리 흔들리며 무너져갈 때,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고와 가치관이 새로워진 우리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올바른 삶의 길을 선택하여 나아감으로써 끊임없는 축복과 은혜를 경험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전히 자신의 생각과 판단을 고집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 세상적인 삶으로 한 걸음 한 걸음 옮겨가게 되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역사가 제한된다. 그 결과 우리의 삶은 점차적으로 무너진다.

행 19:18-19 믿은 사람들이 많이 와서 자복하여 행한 일을 고하며 19 또 마술을 행하던 많은 사람이 그 책을 모아 가지고 와서 모든 사람 앞에서 불사르니 그 책 값을 계산한즉 은 오만이나 되더라

초대교회시절, 많은 자들이 믿고 구원을 얻었다. 그들은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자신들이 행한 죄악들을 자백했다. 뿐만 아니라, 마술을 행하던 많은 사람들은 그 책들을 모아 가지고 와서 모든 사람 앞에서 불살랐다. 이처럼 자복하고 불사르는 것은 과거 죄악 속에서 행하던 모든 것들을 버리겠다는 강한 의지의 표현이다.

구원받은 자로서 우리는 지속적인 기도와 말씀묵상을 통해 매일 매일의 삶에서 하나님의 뜻에 벗어난 것들을 끊어내고 불사르는 작업을 해나가야 한다. 언제 어떠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선택하여 살아갈 수 있는 믿음의 의지를 키워나가야 한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여전히 과거의 것들을 끌어안고 살아간다. 오늘 우리가 버리지 못하는 것들, 오늘 우리가 불사르지 않는 것들로 인해 언제든지 위기의 상황에 놓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단이 주는 거짓 평안, 거짓 위로에 빠져 안일한 삶을 살아간다.

고후 10:5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니

분별력이 약한 우리는 잘못 판단할 수 있고 잘못 선택할 수 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분명한 말씀과 성령의 감동, 사람과 환경 등을 통해 올바른 길을 제시하신다. 이때 우리는 돌이켜야 한다. 과감히 자신의 생각과 판단을 버리고 그리스도께 복종해야 한다. 그러나 마음이 완악해진 자들은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에 반응하지 않는다. 여전히 자신의 상황에서는 그럴 수밖에 없지 않느냐며 자신을 정당화시킬 뿐, 변화의 삶으로 나아오지 않는다.

딸만 다섯인 집의 장녀로써 아들을 염원하는 부모의 모습을 보고 자란 한 여성은 자신도 모르게 첫째인 딸보다 둘째인 아들에게 집착하게 되었다. 아들 역시 그러한 엄마에게 지나치게 의존하였다. 그러자 담임목회자는 아이가 자유롭고 독립적인 아이로 자랄 수 있도록 아들에 대한 집착을 끊을 것을 권면했다. 이처럼 내 뜻과 하나님의 뜻이 부딪칠 때, 어떠한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아이의 미래는 현저하게 달라진다.

잘못된 생각, 잘못된 삶의 길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자신이 옳다고 주장할 때, 우리는 하나님을 대적하게 된다. 자신을 정당화하기 위해 자신에게 동조하지 않는 자들을 고통스럽게 하며 다툼과 분열을 야기하게 된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는 끊임없이 올바른 길을 제시하신다. 이때, 그 하나님의 음성에 우리의 생각들을 굴복시키게 되면, 그 즉시 우리는 마음의 평안과 소망을 얻게 된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두려워하거나 절망하지 않을 뿐 아니라, 자신을 핍박하는 자들마저 용서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성숙한 삶으로 나아가게 된다.

마 28:18-20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19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세상 끝날까지 내가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

갈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우리를 사랑하신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박히셨다. 그리고 우리의 소망을 위해 부활하셨을 뿐 아니라,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항상 함께 있겠다고 약속하셨다. 따라서 우리는 담대히 세상과 부딪쳐 나가야 한다. 변함없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끊임없이 우리를 붙잡고 계신 하나님을 의지하여 변화의 삶으로 나아가야 한다.

학개 1:2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여 이르노라 이 백성이 말하기를 여호와의 전을 건축할 시기가 이르지 아니하였다 하느니라

70년간 바벨론의 포로가 되어 고통의 삶을 살아오던 이스라엘민족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본국 이스라엘로 돌아오게 되었다. 너무나 감사하고 기뻤던 그들은 돌아오는 즉시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는 성전을 재건하겠다는 서원을 드렸다. 그러나 막상 돌아오고 보니 모든 것이 무너진 이스라엘에는 먹을 것도, 살 집도 없었다. 결국 그들은 하나님의 전을 건축하는 것보다 자신들이 살 집을 마련하는 것을 더욱 급하고 중요하게 여기게 되었다. 하나님 중심적이던 그들의 삶이 자기중심적인 삶으로 변질되어 버렸다.

학 1:6 너희가 많이 뿌릴찌라도 수입이 적으며 먹을찌라도 배부르지 못하며 마실찌라도 흡족하지 못하며 입어도 따뜻하지 못하며 일군이 삯을 받아도 그것을 구멍 뚫어진 전대에 넣음이 되느니라

돌아온 백성들은 자신의 집을 세우기 위해, 안정되고 평안한 삶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수입은 적었다. 먹어도 배부르지 않았고, 마셔도 여전히 목이 말랐으며, 입어도 따뜻하지 않았다. 아무리 열심히 재물을 모아도 흩어나갈 뿐이었다.

무너짐은 원인 없이 다가오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끊임없이 그들에게 말씀하셨고 올바른 길을 제시하셨다. 그러나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겠다는 비전을 상실한 그들은 그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여전히 자신들의 생각을 옳게 여기며 당장 눈앞에 있는 것만을 좇아 하나님과 관계없는 삶을 지속해나갔다.

우리는 자신이 원하고 자신이 계획하는 대로 세상이 움직여줄 것이라는 착각을 갖고 살아간다. 그러나 아무리 완벽한 계획을 세운다할지라도 수많은 이해관계와 변수들이 존재하는 세상은 우리의 예상을 뒤엎는다. 이러한 세상에서 흔들림 없이 나아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해야 한다. 하나님을 우리 마음의 성전에 모시고, 그 하나님과 함께 이 세상의 삶을 살아나가야 한다.

학 1:7-8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니 너희는 자기의 소위를 살펴 볼찌니라 8 너희는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가져다가 전을 건축하라 그리하면 내가 그로 인하여 기뻐하고 또 영광을 얻으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상실된 비전은 심한 무너짐의 삶으로 이어진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하루라도 빨리 성전을 건축하라고 재촉하시는 이유이다. 오늘 우리가 잘못된 판단으로 하나님을 떠나 세상적인 삶 가운데 있다면, 하루라도 빨리 돌이켜야 한다. 세상의 뜻대로 살아오는 동안 망가질 대로 망가진 우리의 마음에 하나님의 전을 건축해야 한다. 하나님 말씀과 그 뜻에 따라 하나님 중심적인 삶으로 살아가고자 몸부림쳐야 한다. 그러할 때, 적게 뿌려도 많이 거두는 삶, 부족함 없이 만족하는 삶, 허망하게 새어나감이 없는 축복의 삶을 살아가게 된다.

세상은 우리의 뜻대로 움직여지지 않는다. 아무리 완벽한 계획을 세운다할지라도 수많은 이해관계와 변수들이 우리의 예상을 뒤엎는다. 이처럼 예측할 수 없는 세상 속에서 연약한 인간은 불안과 두려움의 삶을 살아간다. 그러나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들에게는 두려움이 없다. 세상의 어떠한 요동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올바른 길을 선택하여 나아간다.

두려움을 이기기 위해서는 첫째, 분별력을 가져야 한다. 삶이 평안할 때, 우리는 쉽게 교만해지고, 그릇된 삶을 고집하게 된다. 따라서 우리는 지속적으로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임으로써 우리의 마음과 생각들을 새롭게 해야 한다. 둘째, 믿음의 의지를 가져야 한다. 지속적인 기도와 말씀묵상을 통해 어떠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선택할 수 있는 믿음의 의지를 키워나가야 한다. 셋째, 그리스도께 복종해야 한다. 비록 잘못된 판단, 잘못된 삶의 길에 있다할지라도 올바른 하나님의 길이 제시될 때, 그 즉시 자신의 생각, 자신의 판단들을 내려놓아야 한다. 넷째, 예수님을 의지해야 한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함께 하실 예수님을 의지하여 담대히 세상과 부딪쳐나가야 한다. 마지막으로 마음의 성전을 건축해야 한다. 하나님을 우리 마음의 중심에 모시고, 그 하나님의 말씀과 뜻에 따라 살아가고자 몸부림쳐야 한다. 그러할 때, 우리는 두려움을 이기고 담대히 세상과 부딪쳐나가게 된다. 예측할 수 없는 세상의 흔들림 속에서도 올바른 길을 선택하여 나아감으로써 하나님의 역사가 넘치는 축복의 삶을 살아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