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된 새로운 삶

작성자
표재근
작성일
2020-04-01 10:10
조회
1325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형성하는데 있어 어려움을 겪는 것은 우리의 영적인 열등감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비전을 주시고, 우리를 사용하시겠다고 말씀하시며, 우리를 통해 역사하고자 하십니다. 또한 위기와 어려움의 환경 속에서 우리를 도우시고, 새롭게 하기 원하십니다. 그러나 영적인 열등감은 우리로 하여금 이러한 하나님을 향해 마음을 열지 못하게 합니다. 자신의 부족하고 연약한 모습, 자신의 허물과 죄를 바라보며 우리 스스로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지게 합니다.

영적인 열등감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이런 나를 사랑하지 않으실 것이다, 이 정도밖에 되지 못하는 나를 통해 무슨 역사를 이룰 수 있겠는가?’와 같은 생각들에 매이게 합니다. ‘나는 할 수 없다, 나는 안되는 사람이다.’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정말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연약한 삶의 한계에 머물게 합니다.

한 목회자가 젊은 나이에 부흥과 교회의 성장을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여러 가지 요인으로 인하여 큰 실패를 경험하게 되었을 때, 이 목회자는 영적인 열등감에 빠져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변함없이 그를 통해 역사하기 원하셨고, 하나님의 역사를 감당할 만한 영성과 능력이 그에게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다시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사용하지 않으실 것이고, 더 이상 자신을 통해 역사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스스로 자신을 억제하며 하나님의 역사들을 제한했습니다.

이처럼 사단은 영적인 열등감에 빠진 우리를 집요하게 파고듭니다. ‘너는 죄인이다, 너는 악하다, 죄를 범한 너에게 하나님은 역사하지 않을 것이다 등’ 이런 잘못된 생각들을 계속적으로 불어넣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 서지 못하게 합니다.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영적인 열등감을 깨뜨려야 합니다. 영적인 열등감이 있는 상태에서는 하나님과의 관계 형성이 지속적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일시적으로는 하나님과 관계를 맺을지라도 시간이 지나고 신앙의 어려움이 오게 되면, 또다시 하나님이 자신을 사랑하지 않고, 자신에게 역사하지 않으실 것이라는 사단의 미혹에 넘어가 스스로 낙망하며 무너져가기 때문입니다.

<고후 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피조물이란 창조된 것을 의미합니다. 무에서 유로, 즉 있던 것을 변화시킨 것이 아니라, 없던 것을 있게 만든 것입니다. 따라서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는 말씀은 예수를 믿는 자들이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창조물이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죄와 사망과 사단의 역사 안에 있던 우리를 조금 낫게 변화시킨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새로운 존재로 만들어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의 영과 혼은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지만, 우리의 육은 여전히 과거의 삶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로 인해 변화되지 못한 육체 안에서 새롭게 창조된 우리와 과거의 우리가 싸우게 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미 우리는 새로운 피조물이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육적인 삶과 죄악에 관계없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붙잡고 계시고, 우리 가운데 역사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을 믿고 그 역사를 시인할 때, 우리의 육적인 삶은 점차로 무너지게 되고, 새로운 피조물로서의 삶으로 변화되어 갑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신앙인들이 하나님의 역사를 바라보지 않고, 자신의 죄와 허물만을 바라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새로운 삶을 바라보지 않고, 과거에 살아왔던 육적인 삶의 모습만을 바라봅니다. 이로 인해 우리는 하나님을 보지 못하고, 하나님의 역사를 소망하지 못합니다. 나는 할 수 없고, 나는 안 되고, 하나님이 나에게는 역사하지 않을 것이라는 부정적인 생각으로 우리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역사들을 거부하며 무너져갑니다.

<엡 2:1>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우리의 허물과 죄로 인해 우리는 영원한 죽음가운데 들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우리를 살리셨습니다. 분쟁과 다툼, 악행과 잘못된 삶 가운데 있는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습니다. 새로운 피조물로 만들어주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허물과 죄 가운데 있는 우리에게 역사해주셨습니다.

하나님과 관계를 맺어감에 따라 우리는 우리의 죄와 허물들에 대한 찔림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새로운 삶으로 변화되기 위해 노력하게 됩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과 관계를 맺기도 전에 자신의 죄와 허물에 눌려 하나님께 나아오지 않습니다. 우리의 죄와 허물에 관계없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고, 우리를 향한 역사들을 경험하지 못하여 좌절하고 낙망하는 삶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부모가 어린 자녀의 잘못된 행동을 책망하거나 벌을 줄 때, 자녀들은 자신들의 잘못으로 인해 부모가 더 이상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자녀가 어떤 잘못을 한다할지라도 자녀에 대한 부모의 사랑은 변함이 없습니다. 사랑하는 자녀를 올바른 삶으로, 더 나은 삶으로 이끌기 위해 사랑의 매를 드는 것뿐입니다.

동일하게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에게 역사하심에 있어 우리의 죄와 허물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매우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영적인 열등감에 빠져 우리의 죄와 허물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역사를 단절시킨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기억할 것은 죄가 있는 곳에 은혜가 넘친다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가 연약하고 우리가 죄 가운데 있기에 더욱 큰 사랑으로 우리를 품어주시는 하나님이심을 깨달아야 합니다.

<행 17:28>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있느니라 너희 시인 중에도 어떤 사람들의 말과 같이 우리가 그의 소생이라 하니

그리스도인의 존재는 예수를 힘입어 숨을 쉬며, 예수를 힘입어 움직이는 존재입니다. 이는 우리의 모든 삶에 예수 그리스도가 함께 하심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하여 걷고, 입고, 먹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여 말하고, 보고, 생각하며, 계획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다가오는 모든 위기와 어려움들을 이겨내며, 하나님의 역사로 모든 것을 새롭게 합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가지 못합니다. 그리스도인이면서도 하나님을 의지하여 살아가지 않고,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지 못하며,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지 못합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을 시작조차 하지 못합니다. 우리의 영적인 열등감이 동행하시는 하나님을 보지 못하게 하고, 하나님의 역사를 제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현재 모습 그대로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비록 죄가 있고 허물이 많다 할지라도 그 모습 그대로 받아주시고, 우리의 삶에 역사해주십니다. 이러한 하나님을 기억하고, 그 하나님께 나아갈 때, 우리는 영적인 열등감을 깨뜨릴 수 있고, 하나님을 힘입어 새로운 피조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엡 2:10>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음을 받았습니다. 이는 그리스도인된 우리가 이 땅에 하나님의 역사를 가져오는 통로가 됨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한 사람이 가난과 질병으로 고통 받을 때, 하나님은 주위의 그리스도인들을 통하여 그 사람에게 역사하십니다. 지식과 기술과 물질 등으로 주위의 그리스도인들의 삶을 축복하심으로 하나님의 역사가 필요한 사람들을 돕게 하십니다. 선한 일을 위하여 지음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을 통로삼아 하나님의 선한 일들을 이루어 가십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영적인 열등감에 빠져 하나님의 통로가 되지 못합니다. 선한 일을 위하여 지음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행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역사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 나를 통해 어떠한 역사도 이룰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주위의 영혼들을 돌아보지 않고, 그들을 향해 나아가지 않습니다. 선한 일을 이룰 수 있도록 부어주신 하나님의 축복들을 전해주지 않습니다.

한 사람이 불치병에 걸려 시한부인생을 선고받았습니다. 그때 가족 중에서 유일하게 예수님을 믿던 사람이 그를 하나님께로 인도하여 함께 교회에 나갔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치유하신다는 확고한 믿음으로 온 교인이 함께 기도하며 하나님의 역사를 간구했습니다. 결국 불치병을 치유하시고, 영혼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주어졌습니다.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통로가 되려 하지 않았을 때, 이 사람은 죽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이 하나님의 통로가 되었을 때, 이 사람은 죽음의 고통에서 놓여나 새로운 생명을 얻었습니다.

따라서 오늘 우리는 우리 안에 있는 영적인 열등감을 벗어버려야 합니다. 부족하고 연약한 나를 통해 하나님께서 역사하신다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러한 믿음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선포할 때, 우리는 수많은 자들에게 생명과 소망의 역사를 전해주는 하나님의 통로가 됩니다.

또한 하나님의 통로가 되어 선한 일을 감당하고자 할 때, 우리의 생각과 능력으로 하나님의 감동을 소멸하지 말아야 합니다. 인간적인 사고와 가치관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제한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 또한 영적인 열등감이기 때문입니다. 일을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고, 우리는 그 역사를 이루는 도구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이루시고자 하시면, 그 일을 이룰 수 있도록 필요한 사람과 필요한 물질을 주시고, 적합한 환경을 만들어주신다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처럼 우리가 우리의 생각이 아닌 하나님에 대한 믿음으로 움직일 때, 하나님의 선한 역사들이 우리를 통해 이루어지게 됩니다.

영적인 열등감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형성하지 못하게 하며, 우리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역사들을 제한하게 합니다. 또한 사단은 우리의 영적인 열등감을 파고들어 우리로 하여금 자신의 부족하고 연약한 모습, 자신의 허물과 죄만을 바라보며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지게 만듭니다. 따라서 영적인 열등감이 깨어질 때,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형성해나갈 수 있습니다.

영적인 열등감을 깨뜨리기 위해서는 우리의 허물과 죄에 상관없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에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허물과 죄 가운데 있던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 새로운 피조물이 되게 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해야 합니다. 새로워진 우리의 영과 혼이 과거에 얽매인 육체와 갈등을 일으킬 때, 우리의 육적인 삶과 죄악에 관계없이 우리를 붙잡고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선포해야 합니다. 그러할 때, 우리의 육적인 삶은 점차로 무너지고, 새로운 피조물로서의 삶으로 변화되어 갑니다.

영적인 열등감이 깨어질 때, 우리는 선한 일을 위하여 지음 받은 그리스도인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선한 일을 이루어감에 있어 인간적인 생각과 가치관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부족하고 연약할지라도 우리를 통하여 역사하실 하나님을 선포하며 믿음으로 나아갈 때, 우리는 하나님의 통로가 됩니다. 하나님의 선한 역사를 필요로 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생명과 소망의 역사를 전하게 되고, 하나님의 축복을 전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