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만과 시험

작성자
표재근
작성일
2023-12-31 09:28
조회
159
다른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고, 다른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것에는 분명한 희생이 뒤따른다. 나만의 즐거움이나 나만의 시간을 포기해야 하고, 내가 가진 것들을 나누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때로 다른 사람들의 몰이해 혹은 비난까지 감수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시선이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들을 향해 있다면, 우리는 낙심하지 않고 기꺼이 고통의 시간들을 통과할 수 있다.

이처럼 영적인 성숙은 자신에게로 향해 있던 시선을 다른 사람들에게로 옮겨가는 것이다. 우리의 시선이 자신에게 향해 있을 때, 우리의 마음은 욕심과 이기심으로 가득하게 된다. 그로 인해 삶은 고통과 아픔과 실망이 끊이지 된다. 반면에 우리의 시선이 다른 사람에게로 향하게 되면, 다른 사람들의 기쁨과 행복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희생과 고통을 감수하게 된다. 다른 사람들이 기뻐하는 모습에 함께 기뻐하게 되고, 다른 사람들이 행복해하는 모습에 함께 행복해하게 된다.

삼상 9:1-2 베냐민 지파에 기스라 이름하는 유력한 사람이 있으니 그는 아비엘의 아들이요 스롤의 손자요 베고랏의 증손이요 아비아의 현손이며 베냐민 사람이더라

삼상 10:6-7 네게는 여호와의 영이 크게 임하리니 너도 그들과 함께 예언을 하고 변하여 새 사람이 되리라 7 이 징조가 네게 임하거든 너는 기회를 따라 행하라 하나님이 너와 함께 하시느니라

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 세워졌던 사울은 영적으로나 육적으로나 완벽한 자였다. 육적으로 볼 때, 그의 집안은 베냐민 지파에서 유력한 집안이었고, 사울의 외모는 이스라엘 모든 사람 중에서 가장 준수했다 이에 더하여 사울은 뛰어난 지성과 능력과 겸손한 성품까지 소유했다. 영적으로도 하나님의 영이 크게 임한 자로서 선지자들과 함께 예언을 할 정도로 뛰어났다. 무엇보다도 사울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자였다.

그러나 이처럼 모든 것이 완벽했음에도 불구하고 사울은 넘어졌다. 자신만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돌이키지 못했다. 만일 그가 자신을 택하신 하나님을 바라보고, 자신을 지도하는 사무엘을 바라보며, 수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바라보았다면, 그는 이스라엘을 부강하게 만들고 수많은 하나님의 역사들을 이룬 위대한 왕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만을 바라봄으로써 자신의 욕심과 이기심만을 좇은 사울의 삶은 죽는 날까지 전쟁과 고통과 분란이 떠나지 않았다.

거시적인 측면에서 볼 때, 사회는 세밀하게 구성된 네트워크이다. 따라서 사회가 원활하게 움직여가기 위해서는 모든 것들이 잘 어우러져야 한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자신만을 위해 살아간다. 자신만을 향한 좁아진 시각으로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들을 바라보지 못한다. 자신만을 향한 닫혀진 귀로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그 결과 가정을 비롯하여 우리가 속한 모든 사회는 불필요한 비판, 불필요한 고통, 불필요한 혼란들로 넘쳐난다.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십자가의 죽음의 길을 택하심으로써 ‘내가 죽고 네가 사는 삶’이 얼마나 가치 있는가를 가르쳐주셨다. 동시에 우리에게도 다른 사람들을 위해 기꺼이 십자가에 매달리는 소명을 부어주셨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지 않는다. 자기를 부인하고 나를 따르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부인하지 않는다. 자신이 아닌 우리를 바라보심으로써 우리 안에 변화를 이루어내신 예수님과 같이 다른 사람들을 바라보지 않는다. 힘들고 고통스러운 생명의 길을 버리고 쉽고 편한 죽음의 길을 선택하여 걸어간다.

오늘 우리는 끊임없는 원망과 불평을 토해낸다. 가난을 물려준 부모를 원망하고, 자신에게 상처와 고통을 주는 사람들을 원망한다. 그러나 상처 없고 고통 없는 사람은 없다. 단지 그 상처와 고통 속에서 이를 악물고 자신을 변화시켜가는 사람이 있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원망과 비판과 정죄만을 일삼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처럼 무기력하고 부정적인 삶의 태도는 자녀들의 삶에 그대로 답습된다는 것을 분명히 기억해야 한다.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동일한 고통과 아픔을 물려주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이를 악물고 자신을 변화시켜나가야 한다.

오늘날에도 차가 한번밖에 들어가지 않는 깊은 시골에서 태어나 극심한 가난과 술로 세월을 보내는 아버지 밑에서 자라던 한 아이는 이 고통을 자신의 대에서 끊어내겠다는 결심을 했다. 아이는 이를 악물고 공부했고, 당시 최고의 학교들을 거쳐 전쟁으로 무너진 나라의 재건에 앞장서게 되었다. 그러면서도 술은 한모금도 입에 대지 않았다. 현재 그의 자녀들은 어느 누구보다 반듯하고 올바르게 자라났고, 자신들의 분야에서 뛰어난 역량을 발휘하고 있다. 만일 자신만을 바라보았다면 그 역시 부모를 원망하고 세상을 비판하며 가난과 고통만을 대물림했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을 바라보며 자신의 고통을 발전의 원동력으로 삼았던 결단과 헌신은 가족을 비롯하여 수많은 사람들의 삶에 커다란 변화를 이루어내었다.

삼상 13:5-6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모였는데 병거가 삼만이요 마병이 육천 명이요 백성은 해변의 모래 같이 많더라 그들이 올라와 벧아웬 동쪽 믹마스에 진치매 6 이스라엘 사람들이 위급함을 보고 절박하여 굴과 수풀과 바위 틈과 은밀한 곳과 웅덩이에 숨으며

블레셋의 수많은 병거와 마병과 군인들이 이스라엘과 싸우기 위해 올라왔다. 그 모습을 본 이스라엘 백성들은 허겁지겁 도망가 숨어버렸다. 이처럼 다급한 순간에 하나님께서는 사울을 시험하셨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붙잡는 믿음의 사람이 되어 이후 수많은 하나님의 역사들을 이루어갈 수 있는 자로 사울이 세워지기를 원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전쟁에 앞서 하나님께 번제 드리는 과정에서 번제를 주관하는 사무엘에게 칠일 후에 가라고 하셨다. 사울은 이 시험을 견디지 못했다. 칠일을 기다리지 못하고 사무엘이 오기 전, 스스로 번제를 드리는 죄를 범했다. 하나님의 영이 크게 임했고, 하나님께로부터 함께 하시겠다는 약속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환경의 어려움이 다가오자 하나님에 대한 확신을 놓쳐버렸다.

삼상 15:3 지금 가서 아말렉을 쳐서 그들의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하되 남녀와 소아와 젖 먹는 아이와 우양과 낙타와 나귀를 죽이라 하셨나이다 하니

삼상 15:9 사울과 백성이 아각과 그의 양과 소의 가장 좋은 것 또는 기름진 것과 어린 양과 모든 좋은 것을 남기고 진멸하기를 즐겨 아니하고 가치 없고 하찮은 것은 진멸하니라

하나님께서는 다시금 사울에게 우상을 섬기며 온갖 죄를 범하던 아말렉을 치고 그 모든 소유, 즉 모든 사람과 모든 가축을 진멸하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이번에도 사울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다. 아말렉의 왕 아각을 살려두었을 뿐 아니라, 양과 소를 비롯하여 모든 좋은 것들은 남기고 하찮은 것만을 진멸했다.

하나님의 말씀이 주어질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순종이다. 그러나 그 말씀이 내 이익, 내 욕심, 내 판단과 부딪칠 때, 우리는 사울과 같이 갈등한다. 우리의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이 부딪쳐오고 새로운 삶에 대한 도전이 주어질 때, 주저함 없이 그러한 삶으로 나아가야 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이익에 따라 적당히 타협한다. 그 결과 어떠한 변화, 어떠한 성장, 어떠한 하나님의 역사도 이루지 못하는 한계적인 삶을 지속한다.

삼상 15:13-15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른즉 사울이 그에게 이르되 원하건대 당신은 여호와께 복을 받으소서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행하였나이다 하니 14 사무엘이 이르되 그러면 내 귀에 들려오는 이 양의 소리와 내게 들리는 소의 소리는 어찌 됨이니이까 하니라 15 사울이 이르되 그것은 무리가 아말렉 사람에게서 끌어 온 것인데 백성이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 하여 양들과 소들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을 남김이요 그 외의 것은 우리가 진멸하였나이다 하는지라

이때에도 하나님께서는 사울을 돌이키기 위해 사무엘을 보내어 책망하게 하셨다. 그러나 사울은 변명했다. 개인적인 명예욕과 욕심으로 인해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고 아말렉의 양과 소를 끌어왔음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이 하나님께 제사 드리기 위해 끌어왔다며, 자신의 죄를 백성들에게 떠넘겼다.

하나님의 말씀이 주어질 때, 우리는 찔림을 받는다. 잘못된 삶의 부분들에 대한 책망과 함께 새로운 삶의 모습을 제시받게 된다. 이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변명이 아닌 받아들임이다. 끊어내고 돌이키는 회개를 통해 다시는 그러한 삶을 반복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변명한다. 그 책망을 받아들이지 않고 하나님 안에 올바로 서기 위한 결단의 삶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변명하고 변명하며 불순종의 삶으로부터 돌이키지 않은 사울은 결국 하나님께로부터 버림받았다. 우리 역시 변명의 삶을 지속하게 되면, 신앙과 삶이 잘못된 방향으로 굳어지게 되고, 돌이킬 수 없는 무너짐 가운데 놓이게 됨을 기억해야 한다.

삼상 15:22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자신을 변명하는 사울을 향해 사무엘은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고 책망하며 하나님께서 순종하지 않는 사울을 버렸음을 선고했다. 순종하지 않을 때, 우리의 신앙은 성장할 수 없고, 삶은 어떠한 변화도 이룰 수 없다. 아무리 많은 예배를 드리고 오랜 시간 기도하며 헌신과 봉사를 한다할지라도 그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게 되면, 그 모든 예배와 기도와 헌신과 봉사는 단순한 형식에 지나지 않게 된다. 오랜 신앙생활에도 불구하고 기쁨이 없고 소망과 열정이 없는 연약한 삶을 지속하게 된다.

삼상 15:30 사울이 이르되 내가 범죄하였을지라도 이제 청하옵나니 내 백성의 장로들 앞과 이스라엘 앞에서 나를 높이사 나와 함께 돌아가서 내가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경배하게 하소서 하더라

삼상 15:35 사무엘이 죽는 날까지 사울을 다시 가서 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가 사울을 위하여 슬퍼함이었고 여호와께서는 사울을 이스라엘 왕으로 삼으신 것을 후회하셨더라

사울은 자신이 범죄한 것을 인정했다. 그러나 자신이 범죄하였을지라도 장로들과 이스라엘 앞에서 자신을 높여달라고 사무엘에게 매달렸다. 진정으로 하나님의 책망을 받아들이지 않았을 뿐 아니라 변화되고자 하는 마음의 준비조차 되어있지 않았다. 철저하게 낮아져서 하나님 앞에 통곡하며 모든 백성 앞에서 회개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권위를 세우기에만 급급해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사울을 이스라엘 왕으로 삼으신 것을 후회하셨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지 않는 사울의 삶은 비참하게 무너져갔다.

고전 10:12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이처럼 자신만을 바라보며 불순종과 변명의 삶으로 무너져간 사울을 통해 우리는 자신의 신앙과 삶을 돌아보아야 한다.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는 말씀을 붙잡고 하루 하루 올바른 삶으로 나아가기 위해 몸부림쳐야 한다. 얼마나 많은 예배를 드리고 기도를 하며 봉사를 하는가가 아니라, 얼마만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있는가를 기준으로 삼아 우리의 삶을 움직여나가야 한다. 그러할 때, 우리의 삶은 점차적으로 그리스도의 흔적으로 채워지게 된다. 주변의 수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통해 기쁨과 소망을 얻고 변화의 삶으로 나아가게 된다.

우리의 시선이 자신에게로 향해 있을 때, 우리의 마음은 욕심과 이기심으로 가득하게 된다. 그로 인해 주어지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게 된다. 또한 그러한 자신을 변명하며 잘못된 신앙과 삶으로 굳어져가게 된다.

따라서 우리는 순종을 기준으로 삼아 매일 매일 자신의 신앙과 삶을 점검해나가야 한다. 첫째, 하나님의 말씀이 부딪쳐오고 새로운 삶에 대한 도전이 주어질 때, 주저함 없이 그러한 삶으로 나아가야 한다. 둘째, 변명하지 말아야 한다. 비록 범죄하였다할지라도 하나님의 책망을 받아들이고 잘못된 삶으로부터 과감히 돌이켜야 한다.

이처럼 어떠한 상황에서도 하나님께 순종하며 그 말씀에 따라 자신을 변화시켜나갈 때, 점차적으로 우리의 시선이 다른 사람들에게로 향하게 된다. 다른 사람들의 기쁨과 행복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희생과 고통을 감수하게 된다. 자신을 부인함으로써 수많은 사람들의 삶 가운데 새로운 변화와 역사들을 이루어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