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의 사명

작성자
표재근
작성일
2018-08-11 19:33
조회
2641
<행 1:7-8> 가라사대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 바 아니요 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죄와 사망의 고통 가운데 있던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님은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육신을 입고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 값을 대신 치르시고, 우리를 자유케 하셨습니다. 또한 죽음에서 부활하시고 하늘로 올라가시기 전, 성령이 너희에게 임할 것이라는 약속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약속대로 믿는 자들에게 임하신 성령은 우리와 동행하시며, 우리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으로 인도하십니다.

<요 10:15-16>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16 또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 터이니 저희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

이 땅의 모든 인간은 상처와 고통 속에서 살아갑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살아가야할 소망이 없음으로 괴로워합니다. 이 땅이 사단과 사망의 권세 아래 놓여 있고, 사회의 근본적인 구조자체가 인간의 이기심과 욕심으로 이루어져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어떠한 고통과 절망의 상황에서도 기쁨과 소망을 잃지 않고, 환경을 넘어서서 변화를 이루어내는 삶을 살아갑니다.

이처럼 예수님을 믿는 자들이 세상 사람들과 다른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이 우리를 불러 자신의 울타리 안에 들여놓으시고 친히 목자가 되어주셨기 때문입니다. 매일매일 푸른 풀과 맑은 물로 먹이시고, 사단의 세력에서 보호해주시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과 동일하게 고통과 두려움의 삶을 살아가던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거하는 천국의 삶을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축복과 은혜가 넘치는 삶을 살아가고 있지만, 여전히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알지 못하여 죄와 사망의 고통에서 신음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자신의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지만, 여전히 수많은 양들이 예수님의 울타리 밖에서 연약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 역시 자신의 울타리 안으로 이끌어 우리와 한 무리가 되게 하시고, 동일한 축복과 은혜의 삶 가운데 거하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그 사명을 우리에게 맡기셨습니다. 이것이 성령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이 땅 끝까지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는 증인이 되어야하는 이유입니다.

<요 17:22>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저희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려함이니이다

왕에게 일만 달란트를 빚진 사람이 빚을 갚을 수 없게 되자 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간청하는 이 사람을 불쌍히 여긴 왕은 모든 빚을 탕감해주고 풀어주었습니다. 자유롭게 된 이 사람이 길을 가다가 자신에게 백 데나리온을 빚진 친구를 만나자, 자신의 돈을 갚기를 요구했습니다. 그리고는 조금 더 기다려달라고 애원하는 친구를 옥에 가두었습니다. 이를 알게 된 왕은 화를 내며 자신이 탕감해준 자를 도로 옥에 가두어버렸습니다.

오늘 우리가 기쁨과 평강을 누리고, 축복의 삶을 살아가는 것은 온전히 그리스도의 은혜입니다. 그런 우리가 우리에게 도움을 구하는 자, 또는 좌절과 실의에 빠져 있는 주위 사람들을 외면한다면, 우리는 일만 달란트의 빚을 탕감 받고도 단 백 데나리온 빚진 자를 용서하지 않는 자와 같습니다.

예수님이 자신의 영광을 우리에게 주신 것은 예수님이 하나님과 하나 된 것처럼, 우리도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하나가 되게 하기 위해서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하나가 되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주셨고, 이로 인해 우리는 그분의 은혜 가운데 거하게 되었습니다. 동일하게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 우리가 죽어짐으로 그들과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는 은혜를 나누어 주어야 합니다.

하나가 된다는 것은 다른 이들의 고통과 아픔에 함께 하는 삶, 즉 선교하는 삶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을 알지 못하여 어두움과 절망 속에서 죽어가는 이들에게 우리 안에 있는 예수님을 전하는 삶입니다. 슬픔에 있는 자들을 위로하고, 소망이 없는 자들에게 그리스도의 소망을 불어넣는 삶입니다. 헐벗고 배고픈 자들에게 우리의 가진 것으로 먹이고 입히는 삶입니다. 질병으로 신음하는 이들을 치유하고, 목마른 자들에게 마실 물을 제공하는 삶입니다.

<요 4:35> 너희가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예수님은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른다고 말하는 제자들에게 이미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다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조금 더 준비하고, 조금 더 적당한 때가 이르면 선교하고 구제하겠다고 말하는 우리에게 예수님은 바로 지금이 선교해야할 때고, 바로 지금이 구제해야할 때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스도인의 사명은 조금 더 성장하고, 조금 더 축복받은 다음에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순간 이미 추수의 사명을 부여받은 것입니다.

이 땅에는 우리가 추수해야할 수많은 영혼들이 있습니다. 전쟁과 기근으로 수많은 자들이 죽어가고 있고, 예방 가능한 질병으로 수많은 아이들이 죽거나 불구가 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의 사명 감당하기를 주저하고 있는 오늘, 몇 천, 몇 만 명의 사람들이 절망 속에서, 배고픔과 질병의 고통 속에서 죽어가고 있습니다. 오늘 하루가 늦어서 죽어가는 수많은 사람들을 대해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책임감을 느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을 받고 성령을 받은 우리는 땅 끝까지 이르러 예수님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축복과 은혜 가운데 거하지만, 여전히 죄와 사망가운데서 신음하는 수많은 자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그들 또한 우리와 한 무리가 되어, 우리와 동일한 축복을 누리기를 원하십니다.

그들을 이끌어 우리와 하나 되게 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신 사명입니다. 이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신 것처럼, 우리도 그들을 위해 죽어야 합니다. 우리의 이기심과 욕심을 죽이고, 우리의 자아를 죽여야 합니다. 그러할 때, 우리는 그들의 아픔과 고통을 함께 느끼고, 우리의 가진 것으로 그들의 필요를 채우게 됩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그리스도인의 사명 감당하기를 미룬다면, 미루는 만큼 영원한 사망으로 나아가는 자들은 더욱 많아집니다. 조금 더 지난 후에, 조금 더 준비된 다음이 아니라, 바로 오늘 그리스도인의 사명을 감당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먼저 우리가 속한 가정과, 직장, 지역사회에서 맡은 바 사명을 온전히 감당할 때, 우리의 마음에 임한 천국은 세계 곳곳의 수많은 영혼들을 향해 확장되어 나가게 됩니다. 선교사를 파송하고 교회를 세워 예수를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배고픈 자들을 먹이고 질병에 걸린 자들을 치유하는 예수님의 증인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