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력

작성자
표재근
작성일
2022-06-26 09:58
조회
429
아무리 좋은 환경, 좋은 여건이 주어진다할지라도 그것을 따라 옮겨갈 수 있는 좋은 습관이 형성되지 않으면, 우리는 어떠한 것도 얻을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아무리 학교의 시설이 좋고 교사가 훌륭하다할지라도 학생이 학교를 가지 않거나, 수업시간에 엉뚱한 짓만 하는 나쁜 습관이 형성되어 있다면 그 학생의 미래는 부정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동일하게 하나님께서는 성령의 역사를 통해 많은 능력과 은혜로 우리의 삶을 채우기 원하시지만, 우리 안에 형성된 나쁜 습관, 나쁜 가치관들이 성령의 인도하심을 거부하며, 변화의 삶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역사를 가로막는 이 한계를 깨뜨리고 변화시키지 않는다면, 우리는 여전히 하나님의 역사가 없는 연약한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한 사람이 왼쪽 엄지발가락을 다쳤습니다. 몸의 전체적인 체중을 감당하고 중심을 잡아주는 엄지발가락이 아프다보니 자신도 모르게 오른발에 더 힘을 주며 움직이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왼발의 고통은 견딜만했지만, 며칠 지나지 않아 허리가 아파오고, 오른쪽 골반과 오른쪽 무릎까지 아파오기 시작했습니다. 왼쪽 발가락의 고통을 최소화하기 위해 반대쪽에 더 힘을 주고 더 많이 사용함으로써 몸의 균형이 깨진 것입니다.

우리의 삶 역시 동일합니다. 어떠한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 문제를 근원적으로 변화시키지 않게 되면, 그 문제로 인해 다른 부분들이 문제를 일으키게 되고, 시간이 흐를수록 그 문제들이 커지면서 삶 전체가 무너지게 됩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신앙생활을 통해 우리로 하여금 자신의 문제들을 좀 더 심각하게 받아들이게 하십니다. 나쁜 습관, 나쁜 가치관들을 가볍게 여겨 대충 덮어버리거나 합리화시킴으로써 이후에 더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삶 하나하나를 명확하게 잡아주시고 변화시켜나가게 하십니다.

오늘날 많은 청소년들이 방황을 하고 가출을 합니다. 그리고 교회를 비롯하여 많은 사회기관에서는 이들을 대상으로 선도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선도활동은 아이에게 일시적인 안정, 일시적인 변화밖에 가져오지 못합니다. 그들이 방황하는 이유는 아이 자체의 문제나 어울리는 친구들의 문제가 아니라 그들을 품지 못하는 가정, 이기심과 욕심으로 비뚤어진 어른들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가르침을 통해 우리의 이기적이며 욕심적인 삶을 정화시켜나가야 합니다. 하나님 안에서 무엇이 올바른가, 어떠한 삶을 살아가야 하는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주어진 상황마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여 우리의 그릇된 삶을 수정해나가야 합니다. 여전히 하나님의 뜻과 가르침을 밀어내려하는 악한 마음과 나쁜 습관들을 제거해나가야 합니다.

과체중의 대표적인 원인은 저녁 늦은 시간에 먹는 야식입니다. 한번 두 번 야식을 먹게 되면, 몸이 기억하여 그 시간만 되면 야식이 먹고 싶어집니다. 이때 절제하지 않게 되면 야식을 먹는 것이 습관이 되고, 체중은 비정상적으로 불어나게 됩니다. 따라서 체중을 줄이기 위해서는 야식 먹는 습관을 끊어내야 합니다. 그러나 안 먹던 것을 먹는 것은 쉽지만, 먹던 것을 끊어내는 것은 매우 고통스럽습니다. 그러할지라도 한 달 정도 참게 되면, 몸은 필요이상의 음식을 요구하지 않게 되고, 체중은 정상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동일하게 죄의 역사를 따라 살아오던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움직여가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육체의 소욕과 이기심, 게으름과 미움 등을 끊어내는 것은 매우 고통스럽습니다. 그러할지라도 잘못된 가치관, 잘못된 습관들을 지속적으로 끊어내게 되면, 어느 순간 하나님 안에서 아름답고 능력적인 삶으로 세워져 있는 우리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반면에 그 과정이 고통스럽다고해서 여전히 자신의 욕심과 이기심에 따라 삶을 옮겨가게 되면, 그 순간은 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우리의 삶은 걷잡을 수 없는 무너짐 가운데 놓이게 됨을 분명히 기억해야 합니다.

마 9:2-8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데리고 오거늘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3 어떤 서기관들이 속으로 이르되 이 사람이 신성을 모독하도다 4 예수께서 그 생각을 아시고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마음에 악한 생각을 하느냐 5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 중에 어느 것이 쉽겠느냐 6 그러나 인자가 세상에서 죄를 사하는 권능이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7 그가 일어나 집으로 돌아가거늘 8 무리가 보고 두려워하며 이런 권능을 사람에게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니라

한 중풍병자가 침상에 누운 채로 여러 사람의 손에 들려 예수님께 나아왔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병의 치유에 앞서 ‘네 죄 사람을 받았느니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인간의 삶에서 가장 근원적인 부분을 만져주셨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역사를 신뢰하지 못하는 인간의 삶은 죄의 역사를 통해 끝없는 고통과 끝없는 아픔, 끝없는 사망이 가득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중풍병자로 하여금 근원적인 죄악의 삶으로부터 벗어나게 하셨습니다. 그의 눈을 열어 하나님을 보게 하시고, 그의 귀를 열어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하시며, 그의 마음을 열어 하나님을 느끼게 하셨습니다. 이를 통해 육체의 치유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후에 그의 삶이 하나님과 동행함으로써 하나님의 풍성한 역사가운데 살아가게 하셨습니다.

한 사람이 젊은 나이에 중풍으로 쓰러져 고통하다가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바라는 질병의 치유는 속히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서서히 이루어지는 치유의 과정 속에서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자라게 되었습니다. 점차적으로 그의 안에 존재하던 죄의 속성들이 빠져나가고 하나님을 느끼게 되면서 자신의 부족하고 연약한 부분들을 딛고 일어서게 되었습니다. 여전히 몸은 불편한 가운데 있지만, 강한 믿음과 확신을 가지고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고, 최선을 다해 삶을 움직여가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곧 우리에게 있어야할 근원적인 변화인 동시에 영적인 성숙을 이룰 수 있는 능력입니다.

만일 우리가 늦은 밤에 거리를 배회하거나 술에 취해 비틀거린다면, 쉽게 강도나 폭행의 표적이 됩니다. 즉 우리 자신을 어떠한 환경에 노출시키느냐에 따라 우리의 삶은 한 순간에 무너질 수도 있고, 모든 환경을 이기고 서는 강력한 역사를 이룰 수도 있습니다. 오늘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역사 안에 우리를 노출시켜야 합니다. 우리를 책망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하고, 그 뜻에 따라 우리의 삶을 움직여가야 합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우리의 귀에 듣기 좋은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우리의 귀를 즐겁게 해주는 사람들 가운데 있기를 좋아합니다.

눅 14:26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

우리의 부모와 처자, 형제자매는 우리가 가장 의지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그들은 항상 우리 입장에 서서 우리를 위로하고 격려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너그럽게 받아주고 이해해주는 듣기 좋은 소리들은 우리의 삶을 무너뜨리고 우리의 영혼을 병들게 합니다.

이로 인해 예수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않으면 능히 내 제자가 될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게 하는 이야기라면, 비록 부모와 처자, 형제자매의 이야기라 할지라도 과감하게 끊어내야 함을 말씀하십니다. 이처럼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우리의 그릇된 부분들을 하나하나 변화시켜나갈 때, 그 변화의 과정들을 통해 우리는 진정한 자유를 얻게 됩니다.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하며 사랑할 수 있는 영적인 성숙을 이루게 됩니다.

엡 4:22-23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23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우리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역사를 거부하며 우리의 삶을 무너뜨려가는 것은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가는 구습을 좇는 우리의 옛 사람입니다. 욕심을 갖게 되면, 우리는 욕심의 대상에게 집착하게 됩니다.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더 많이 소유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과 분쟁하며 죄악된 행동을 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물질을 얻기 위해서라면 다른 사람들의 고통이나 아픔은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누군가를 내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서라면 거짓된 아첨과 선물공세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교회 안에서조차 기도와 섬김이 아닌 세상적인 방법으로 인정받으려 하고 높아지려 합니다. 이러한 옛사람을 벗어버리지 않는 한, 우리의 심령은 새로워질 수 없고, 영적으로 성장할 수 없습니다.

삶이 평안할 때에는 우리가 믿음이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청년자매들은 결혼하고 시어머니와 부딪쳐봐야 과연 믿음이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있습니다. 시어머니 역시 며느리와 부딪쳐봐야 과연 오랜 신앙생활과 삶의 경험이 헛된지 헛되지 않은지를 알 수 있습니다. 믿음이 있는 자, 곧 좋은 습관을 가진 자들은 일차적으로는 고통과 어려움을 경험할지언정 곧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소망으로 그 상황을 견뎌내게 되고, 넘어서게 됩니다. 비록 지금은 우리가 부족하고 연약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한 소망의 끈을 놓지 않고 계심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 하나님의 사랑과 지속적인 역사 안에서 우리가 변화될 수 있음을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사 40:5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리라 이는 여호와의 입이 말씀하셨느니라

하나님께서 제시하시는 삶을 따라가기 위해 최선을 다하게 되면, 우리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게 됩니다. 또한 우리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영광, 즉 우리 가운데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를 보게 됩니다.

따라서 비록 힘들고 어려울지라도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 위해 우리는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가로막는 우리의 부정적인 습관, 연약함, 게으름, 무기력함 등과 영적인 전쟁을 선포해야 합니다. 견뎌내야 하고 부딪쳐야 하며 싸워나가야 합니다. 자녀가 방황하는 것은 자녀를 품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나 때문이고, 교회와 성도가 무너지는 것은 그들을 위해 기도하지 못하는 나 때문이며, 사회가 무너지는 것은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지 못하는 나 때문임을 인식하고 나 자신을 먼저 변화시켜나가야 합니다. 구체적으로 최선을 다해 우리의 잘못된 습관, 잘못된 가치관들을 변화시켜나가야 합니다. 그러할 때, 우리는 자녀들이 편히 쉴 수 있는 행복한 가정을 이루게 되고, 우리의 교회를 굳건히 세우게 되며, 그리스도인으로서 이 세대 가운데 아름다운 영향을 주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령의 역사를 통해 많은 능력과 은혜로 우리의 삶을 채우기 원하십니다. 그러나 우리 안에 형성된 나쁜 습관, 나쁜 가치관들이 성령의 인도하심을 거부하며, 변화의 삶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합니다. 따라서 우리가 영적으로 성숙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뜻과 가르침을 밀어내려하는 악한 마음과 나쁜 습관들을 지속적으로 제거해나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가르침을 통해 우리의 이기적이며 욕심적인 삶을 정화시키며, 주어진 상황마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여 우리의 그릇된 삶을 수정해나가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첫째, 죄의 속성들을 끊어내야 합니다. 지속적으로 하나님께 나아감으로써 죄악의 삶으로부터 벗어나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둘째, 하나님의 역사 안에 우리를 노출시켜야 합니다. 우리를 변화시키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하고, 그 뜻에 따라 삶을 움직여가야 합니다. 셋째, 구습을 쫓는 우리의 옛사람을 벗어버려야 합니다. 강한 믿음과 확신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가로막는 우리의 부정적인 습관, 연약함, 게으름, 무기력함 등과 영적인 전쟁을 싸워나가야 합니다.

이처럼 최선을 다해 하나님께서 제시하시는 삶을 향해 나아가며 우리의 그릇된 부분들을 변화시켜나갈 때, 우리는 진정한 자유를 얻게 됩니다.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하며 사랑하는 성숙된 삶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게 되고, 이 세대 가운데 강한 그리스도인으로 세워지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