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협과 선택

작성자
표재근
작성일
2022-04-01 21:27
조회
565
민 13:31-33 그와 함께 올라갔던 사람들은 가로되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 하고 32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그 탐지한 땅을 악평하여 가로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그 거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33거기서 또 네피림 후손 아낙 자손 대장부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의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이집트에서 종살이하며 고통과 억압 속에서 부르짖던 이스라엘의 탄원을 들으셨습니다. 모세를 통해 그들을 구원하시고,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가나안복지로 인도하셨습니다. 이스라엘민족으로 하여금 그곳에서 나라를 이루게 하시고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가나안 땅에는 이미 많은 민족, 많은 나라들이 세워져있었습니다. 따라서 이스라엘민족이 그 땅에 들어가 나라를 세우기 위해서는 그들과 싸워야했고 그 땅을 정복해야 했습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에 앞서 모세는 각 지파에서 한 사람씩 선출하여 요단강 건너 여리고 지역을 정탐하게 했습니다. 정탐을 마치고 돌아온 그들은 그 땅이 매우 비옥하고 아름다운 땅임을 보고했습니다. 이어서 그 중 열명의 정탐군은 그곳에 있는 모든 백성이 신장이 거대할 뿐 아니라, 아낙 자손 대장부들 앞에서 자신들이 메뚜기처럼 느껴졌다고 말했습니다. 그 백성이 매우 강하여 그들을 이길 수 없다는 부정적인 평가를 했습니다.

그들의 말대로 여리고 성은 매우 견고했고 그 백성은 강했으며, 그들의 무기는 철병거를 비롯하여 매우 다양했습니다. 반면에 오랜 세월 가축을 기르며 애굽의 종으로 살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변변한 무기도 없고 전술이나 병법에도 무지했습니다. 그런 그들이 가나안의 군대와 싸워 이긴다는 것은 불가능해보였습니다. 결국 능히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는 정탐군들의 부정적인 보고 앞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좌절하며 무너졌습니다. 모두 죽게 되었다고 울부짖으며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도하신 땅은 아무도 없는 빈 땅이 아닌, 강력한 민족과 나라가 세워져있는 땅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곳에서 겪을 많은 전쟁과 어려움과 고난속에서 이스라엘 백성 한사람 한사람이 주도적인 믿음을 갖기 원하셨습니다. 믿음이 무엇인지, 하나님의 역사가 어떠한지, 또한 자신들을 통해 하나님께서 어떠한 역사를 이루기 원하시는지를 스스로 깨닫기 원하셨습니다. 스스로 붙잡은 믿음은 활용할 수 있지만, 단순히 주어진 믿음은 활용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여 하나님께 기도하며 고난과 역경을 넘어서서 하나님의 역사를 가져온 자는 이후에 어떠한 고난과 역경이 온다할지라도 믿음으로 그 모든 것을 넘어서게 됩니다. 그러나 기도하지 않고 참고 견디지 않는 자들은 오늘은 믿음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내일은 믿음이 없어 무너지고 쓰러지는 연약한 삶을 반복하게 됩니다.


최근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 야구선수로 활동하던 28세의 젊은이가 사법고시에 합격하여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야구를 해왔지만, 중학교 이후 더 이상 키가 자라지 않아 힘과 기술면에서 뒤처지게 된 젊은이는 고등학교 2학년 말, 스스로 야구를 포기했습니다. 그리고 중학교과정부터 다시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겨우겨우 대학교에 입학했지만 공부를 쉬지 않았고, 군대를 제대한 후에는 사법고시를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법학을 전공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세 번째 시험에서 합격했습니다. 이러한 일이 가능했던 것은 교육의 주체가 젊은이 자신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공부의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이고, 스스로 자신의 삶을 바꾸기 위해 무언가를 해야겠다고 결단했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주체가 됨으로써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을 스스로 조절하고 움직여나갔기 때문입니다.

신앙 역시 주체가 누가 되느냐가 매우 중요합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애굽에 열 가지의 재앙을 내리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보았습니다. 뒤에서는 바로의 군대가 자신들을 추격하고 앞에는 홍해가 가로막힌 절박한 상황에서 홍해가 갈라지는 기적도 보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여리고성 앞에서 무너졌습니다. 스스로 신앙의 주체가 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의 모습 또한 이들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 역시 지나온 삶 가운데서 많은 하나님의 능력과 역사를 경험했습니다. 그 경험을 통해 우리 자신이 신앙의 주체가 되었다면, 현재 어떠한 환경에 처해있을지라도 믿음으로 그 환경과 삶을 변화시켜나갈 것입니다. 그러나 오랜 신앙생활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신앙의 주체가 되지 못했다면, 환경의 흔들림이 다가올 때마다 함께 흔들리며 무너지는 연약한 삶을 지속하게 됩니다.

열 두 정탐군이 똑같이 보았고 똑같은 얘기를 했습니다. 그러나 이에 덧붙여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주시리니 그들을 두려워말라’고 외쳤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 역시 여리고성이 견고하고 그 백성이 강하고 그들의 무기 또한 강력하다는 환경을 부인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러할지라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니 능히 그들을 쳐서 이길 수 있다는 믿음을 선포했습니다. 가나안 복지를 주시겠다고 언약하신 하나님께서 그 언약이 이루어지도록 역사하실 것을 확신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전체가 포기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약속의 땅에 갈 수 없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다 죽을 때까지 이스라엘 민족으로 하여금 광야를 방황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40년이 지나 마지막 한 사람까지 죽자, 하나님께서는 당시의 아이였던 자들과 새로 태어난 자들을 이끌어 다시 여리고 성 앞에 서게 하셨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의 믿음의 영향력 아래 성장한 새로운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그리고 지진을 일으켜 성을 무너뜨리시는 하나님의 역사에 힘입어 전쟁 없이 여리고성을 손에 넣었습니다. 분명한 것은 40년 전에도 하나님께서는 동일하게 역사하실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스스로 신앙의 주체가 되지 못한 당시의 백성들은 40년간 광야를 헤매다가 광야에서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우리 역시 스스로 신앙의 주체가 되지 못한다면 여전히 한계에 부딪쳐 무너지고 쓰러지는 삶을 반복하게 됩니다.

한 아이는 초등학교 때 집을 떠나버린 부모대신 할머니 손에서 어렵게 자랐습니다. 그런데 워낙 몸집이 크고 힘이 세다보니 주먹으로 학교의 아이들을 휘어잡게 되었고, 폭력조직으로부터 스카웃제의까지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고등학교 1학년 때, 할머니마저 주먹을 쓰지 말라는 유언을 남기고 돌아가시자, 그 유언을 지키기 위해 평소 자신의 재능을 알아보고 성악을 권유하던 음악선생님께 성악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전혀 생소한 분야로 공부하는 것이 쉽지 않았고 폭력세계로의 유혹이 견디기 힘들었지만,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를 반복하면서 그 모든 어려움과 포기하고 싶은 마음을 참고 견뎠습니다. 결국 아이는 고등학교 2학년 때, 고교생 파바로티라는 명칭을 얻었고,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에는 대한민국 인재상까지 받았습니다. 또한 5년 후에는 세계무대에서 한국을 빛낼 성악가로 주목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삶의 주체가 되었던 한 아이는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할 수 있다’는 신념을 붙잡고 자신에게 주어진 위기와 어려움을 넘어서서 세계적인 음악가의 대열에 섰습니다. 오늘 우리는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말씀을 통해 끊임없는 신앙의 독려를 받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흔들리고 여전히 쓰러지며 여전히 무너집니다. 아무리 예배를 드리고 성경을 읽고 신앙의 훈련을 받는다할지라도 내가 신앙의 주체가 되지 않으면, 내가 주체적으로 움직여가지 않으면 그 신앙은 살아움직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좋은 환경이 아니라 주체적인 의식입니다. 스스로 하고자 하는 주체적인 의식만 있다면, 환경은 얼마든지 넘어설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 아이는 군인이었던 아버지가 전근할 때마다 학교를 옮겨다니다보니 성적이 좋지 않았습니다. 중학생이 되자 더 이상 옮겨다니는 것이 좋지 않다고 판단한 아버지는 목회하시는 친척에게 자녀를 맡겼습니다. 그곳에서 아이는 예배에 참석하고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만져주심을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베이스기타를 배워 예배시간마다 찬양단으로 봉사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는 자신의 성적이 형편없다는 것을 자각하고 공부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3개월 후, 반에서 3-40등에 맴돌던 성적이 전교 5등이 되었습니다. 중학교를 졸업할 무렵에는 여러 고등학교에서 장학금을 비롯한 여러 가지 혜택을 제시하며 서로 데려가려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올바른 신앙은 주체적인 마음을 갖게 합니다. 자신을 돌아보아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어떠한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인가를 깨닫게 하고, 그러한 삶으로 변화되기 위한 과정을 참고 견디게 합니다. 또한 가족과 이웃을 돌아볼 수 있는 마음, 사회와 민족을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을 갖게 합니다.

집이 가난하여 어린 나이에 양복점 점원이 되었고, 어느 정도 성공한 이후에 정치에 입문했던 앤드류존슨은 링컨 대통령 재임시 부통령이 되었습니다. 그가 저격당한 링컨대통령의 뒤를 이어 대통령이 되었을 때, 수많은 사람들이 그가 초등학교도 나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문제를 제기하며 대통령선거를 다시 해야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때 앤드류존슨은 국민들을 향해 이런 연설을 했습니다.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초등학교를 나왔다는 얘기를 한 번도 들은 적이 없다. 그럼에도 그분은 세계적인 영향력을 갖고 있고 수많은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나에게도 학벌을 묻기 전에 내가 갖고 있는 역량과 열정을 보아주기 바란다.’ 오늘날 그는 링컨의 뒤를 이어 미국사회를 훌륭하게 이끌어간 대통령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이처럼 위기가 오고 어려움이 올 때, 우리가 어떤 반응을 하느냐는 매우 중요합니다. 여리고성과 같이 크고 견고한 문제 앞에서 우리는 할 수 없다고 포기하며 무너질 수도 있습니다. 반면에 하나님께서 명하셨으니 할 수 있다는 믿음을 선포하며 힘 있게 부딪쳐나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쉽게 타협해버립니다. 예를 들어 직장상사가 힘들게 한다는 이유로, 또는 인간적인 대우를 해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쉽게 직장을 옮깁니다. 그러나 자신이 주체가 된 자들은 참아냅니다. 견뎌냅니다. 이겨냅니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더욱 성숙해짐으로써 수많은 사람들을 이끌어갈 수 있는 삶의 변화를 이루어냅니다.

현재 우리의 삶이 주어진 현실과 타협해버린다면 신앙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우리의 삶이, 또한 우리 자녀들의 삶이 세상과 다를 바 없다면, 굳이 신앙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에게 믿음이 있다면, 우리는 더 이상 현실과 타협하지 말아야 합니다. 타협하지 않음으로 인해 주어지는 고통과 어려움들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 견뎌나가야 합니다. 예를 들어 체중을 감량하기 위해서는 먹고 싶은 것을 참아야 하고, 밤마다 배고픈 배를 움켜쥐어야 하며, 운동하기 위해 즐거움과 휴식의 시간들을 포기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고통의 시간들을 참고 견디게 되면 건강과 함께 삶의 활력을 되찾게 됩니다. 오늘 우리가 영적으로 성숙하기 원한다면 더더욱 타협하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 모든 것 위에 계신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또한 지속적으로 하나님께 나아감으로써 하나님 중심적인 사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으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사 64:7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가 없으며 스스로 분발하여 주를 붙잡는 자가 없사오니 이는 주께서 우리에게 얼굴을 숨기시며 우리의 죄악을 인하여 우리로 소멸되게 하셨음이니이다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가 없으며, 스스로 분발하여 주를 붙잡는 자가 없다는 말씀은 이방인들에 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고 예배를 드리며 봉사와 헌신을 하는 자들, 바로 우리를 향한 말씀입니다. 스스로 신앙의 주체가 되지 못한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주의 이름을 부르지 않고, 스스로 분발하여 주를 붙잡지 않습니다. 이로 인해 삶은 어떠한 변화도 없고 신앙은 여전히 제자리에 머물러 있습니다. 이 땅을 향한 하나님의 비전을 보지 못하여 다른 사람들의 고통을 돌아보지 못하고, 자신의 것을 나누지 못합니다.

오늘 우리는 더 이상 타협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스스로 신앙의 주체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믿고 느끼는 신앙의 힘으로 세상과 담대히 부딪쳐 나가야 합니다. 그로 인해 고통이 따라온다면, 당연히 참아야 하고 견뎌내야 합니다.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붙잡고 인내해야 합니다. 눈앞의 현실을 넘어 십년 뒤, 이십년 뒤의 우리의 모습을 바라보고 소망해야 합니다. 그러할 때, 하나님께서 크신 능력과 역사로 우리의 삶을 채워주시고, 우리를 통해 이 땅을 향한 비전을 이루어가십니다.

영적으로 성숙하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이 신앙의 주체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고난과 역경의 삶으로 인도하심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주도적인 믿음을 갖게 하십니다. 그 가운데서 믿음을 붙잡고 하나님께 기도하며, 고난과 역경을 넘어서게 되면, 우리는 이후에 다가오는 어떠한 고난과 역경도 넘어설 수 있는 굳건한 믿음을 소유하게 됩니다.

주도적인 믿음을 갖기 위해서는 첫째, 타협하지 않는 말아야합니다. 비록 주어진 현실이 힘들고 고통스럽다할지라도 세상 모든 것 위에 계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에게 능력주시는 하나님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믿음을 선포하며 힘 있게 부딪쳐 나가야 합니다. 둘째, 고통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타협하지 않음으로 인해 주어지는 고통과 어려움들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 참고 견뎌야 합니다. 셋째, 스스로 분발하여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지속적인 기도와 말씀의 묵상, 예배 등을 통해 우리의 사고와 삶을 하나님중심적인 사고, 하나님 중심적인 삶으로 변화시켜나가야 합니다.

이처럼 우리 자신이 신앙의 주체가 되어 현실과 타협하지 않으며, 그로 인해 주어지는 고통을 참고 견디며, 스스로 분발하여 하나님께 나아갈 때, 우리는 영적으로 성숙하게 됩니다. 가족과 이웃을 돌아보고, 사회와 민족을 돌아보는 성숙한 삶을 통해 이 땅을 향한 하나님의 비전을 이루어가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