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한 삶

작성자
표재근
작성일
2021-10-29 19:10
조회
863
삶을 살아가다보면 잡다한 일들이 많이 발생합니다. 예를 들어 직장에서 동료 간에 라이벌 의식을 느끼고 신경전을 피운다거나, 더 높은 위치에 오르기 위해 경쟁함으로 어려움을 겪습니다. 가족 간에서조차 라이벌의식을 느끼고 경쟁하기도 합니다. 수없이 잡다한 일들에 부딪치다보면 우리의 마음이 상하게 되고, 마음이 상하게 되면, 인간으로서 하지 못할 일들을 하게 됩니다. 가족모임에서 부모의 재산을 조금 더 갖겠다고 다투다가 형제자매간에 살인을 하고, 술 먹고 행패부리다가 나이 드신 부모님을 폭행하여 죽게 하는 일들이 우리 주위에 비일비재합니다.

이처럼 잡다한 일들은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고, 우리의 삶을 분열시킵니다. 그러나 분열된 우리의 삶이 하나로 통일될 때, 비로소 우리는 온전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온전한 삶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가능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우리는 예수님의 삶을 통해 어떠한 삶을 살아가야하는가 깨닫게 되고, 그 삶을 따라가게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하나의 잡다한 일들에 부딪칠 때마다 흔들리고 분열되어져갔던 우리의 삶이 예수님께서 보여주시는 온전한 삶의 청사진을 통해 어떠한 상황에서도 올바르게 행동할 수 있는 삶으로 단일해지고 명확해집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잡다한 일들로 인하여 분열되고 고통스러워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고통 하나하나를 기억하시고, 가장 필요한 순간에 가장 필요한 삶으로 우리를 인도하심으로 우리의 삶을 온전케 하시고, 아름답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한 가정이 가족 간의 관계가 어려워 고통스러워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 가정에 새로운 생명을 허락하심으로 단번에 그 모든 관계를 회복시키시고 분열된 삶을 단일화 하셨습니다. 때로는 질병의 고통이나, 연단과 시험들을 도구로 삼아 분열된 우리의 삶을 단일화하시고, 온전한 삶으로 이끌어주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수많은 잡다한 일들로 인하여 함께 잡다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하며 그 인도하심에 따라 우리의 삶을 움직여나가야 합니다. 하나님께 나아가 잡다한 일들로 인하여 아픈 우리의 마음과 삶의 고통들을 토로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위로하시고 우리의 잡다한 문제들을 해결해주시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출애굽하여 홍해 앞에 섰을 때, 애굽의 군대가 뒤쫓아 왔습니다. 많은 재앙 끝에 이스라엘민족을 놓아줄 수밖에 없었던 것에 대한 분을 풀고, 그들을 다시금 종으로 부리기 위해 수많은 군대를 이끌고 뒤쫓아 온 것입니다. 애굽의 군대를 본 순간, 이스라엘백성들은 잡다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다 죽을 수밖에 없다는 두려움과 함께 자신들을 애굽에서 나오게 한 모세와 하나님을 원망하며 무너져갔습니다. 그때 모세는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는 단 한마디로 잡다하게 무너져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정리시켰습니다. 그리고 통일된 마음으로 하나님의 구원을 간구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한 번도 보지 못한 길, 깊은 바다 가운데 길을 여시고, 이스라엘민족을 구원하셨습니다.

동일하게 잡다한 일들로 인하여 우리의 삶이 흔들리게 되면 우리는 하나님을 놓치게 됩니다. 하나님을 놓치게 되면 우리의 삶이 분열되고, 결국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반대로 아무리 환경이 어렵다할지라도 그 가운데서 하나님을 붙잡게 되면, 우리는 우리의 삶을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기적을 보게 되고, 살아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게 됩니다.

<약 1:6>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잡다한 일들로 인하여 우리의 삶이 번잡해질 때, 우리의 마음은 두 마음이 됩니다. 하나님께 나가야 된다는 마음과 나가고 싶지 않은 마음으로 분열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나가야할 때 나가지 못하게 되면, 우리의 마음속에는 의심이 자리 잡게 됩니다. 그리고 이 의심은 요동하는 바다와 같이 우리의 삶을 계속적으로 흔들게 됩니다. 50%나 70%정도 믿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100%의 믿음만이 진정한 믿음이며, 하나님의 역사를 가져올 수 있는 믿음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면, 100%의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두 마음으로 흔들리는 우리의 마음을 전적으로 하나님께 향하는 마음으로 단일화시켜야 합니다.

세상은 요동하는 바다와 같습니다. 서로를 밟고 올라서려 하고, 내가 더 갖기 위하여 다른 사람의 것을 빼앗으려 하는 세상은 끊임없이 우리를 아프게 하고 고통스럽게 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하나님을 선택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세상과 함께 요동할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이 흔들림으로 우리도 흔들리고, 세상이 절망스러움으로 우리 역시 절망합니다. 세상의 무너짐에 함께 무너져갑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선택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요동이 없고, 절망이 없으며 무너짐도 없습니다. 이미 세상을 이기신 예수님께서 우리 안에 계시고, 우리와 함께 싸우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으로 인하여 우리는 절망을 주는 세상가운데서 새로운 소망을 볼 수 있고, 좌절을 주는 세상 안에서 기적을 이루어낼 수 있으며, 세상이 무너뜨린 곳에서 더욱 강하게 일어날 수 있습니다.

<약 4:8>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케 하라

어려운 환경에 부딪쳤을 때, 우리는 너무나 쉽게 좌절하고 너무나 쉽게 무너져갑니다. 승리자이신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고, 그 예수님을 믿고 따라가기만 하면 우리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풍성한 축복이 주어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축복을 맛보기도 전에 포기하고 좌절합니다. 작은 어려움만 다가와도 더 이상 노력하지 않고, 조그마한 고통에도 견디지 못합니다. 예를 들어 대다수의 학생들이 풍족한 환경임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공부하지 않습니다. 부모나 다른 사람들을 탓하면서 소중한 시간들을 허비합니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고통에만 집중하여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지 않고, 더 큰 고통에 있는 자들을 돌아보지 못합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진정으로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삶의 잡다한 일들이 다가올 때, 우리는 하나님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죽고 싶을 만큼 고통스럽고, 모든 것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더욱 더 하나님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할 때, 흔들리고 분열되어 무너져가던 우리의 삶이 온전해집니다. 이전에는 막히고 힘들고 고통스러워 세상으로부터 숨어 눈물 흘리거나 세상의 쾌락을 좇아갔다면, 이제는 막힐수록 하나님께 매어달려 문제를 해결 받고, 힘들고 고통스러울수록 하나님께 나아가 위로받고 치유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여 불가능한 일들을 가능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마 6:33>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먼저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입니다. 주어진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나에게 어떤 삶을 원하시는가를 먼저 생각한다면, 우리의 삶은 단순해지고 명확해집니다. 온전한 삶을 제시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마음속에 확고하게 자리 잡음으로 인하여, 우리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흔들리거나 무너지지 않게 됩니다.

뇌성마비를 갖고 태어난 아이로 인하여 고통스러워하던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엄마가 아니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아이를 원망했고,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며 삶을 지속할 소망을 갖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중, 주위사람들의 전도로 교회에 가게 되었고,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뇌성마비의 아이가 하나님의 귀한 선물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깨닫게 되자, 번잡했던 어머니의 삶이 단일해지고, 고통스럽던 삶이 아름다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아이가 잘 자라서 동일한 고통에 있는 자들을 돕는 자가 되기를 원하는 소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어머니의 삶이 단일해지자, 아이의 삶 또한 단일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비록 뇌성마비상태일지라도 밝고 자신감 있는 아이로 자라기 시작했습니다. 이처럼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하나님중심적인 삶으로 옮겨올 때, 우리의 삶은 단일해지고 아름다운 소망과 축복이 넘치게 됩니다.

프락시보라는 의학적인 용어가 있습니다. 질병으로 인하여 계속적인 약물을 투여해야 하는 경우, 약물로 인한 부작용을 줄이기 위하여 가짜 약을 처방하는 것을 말합니다. 가짜 약을 복용한 환자들은 진짜 약을 복용한 것과 동일하게 고통의 완화나 안정감을 느낍니다. 신앙의 삶에서도 이러한 프락시보가 존재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행하지만 예수님이 빠져 있으며, 믿는다고 말하지만 믿음으로 행하지 않습니다. 한 예로 한 성도가 사업에 어려움이 오고 가정에 불화가 계속되자, 주위의 신앙인들이 이름을 바꾸거나 집터를 바꾸면 좋아진다고 권면했고, 이 성도는 그 권면에 따랐습니다. 신앙의 공동체 안에서 이루어진 신앙의 권면이지만, 진짜 약인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라, 가짜 약인 세상의 미신을 처방하고 복용함으로써 함께 무너져가는 어리석은 삶입니다.

삶의 위기와 고통이 왔을 때, 이러한 가짜 믿음, 가짜 신앙은 일시적인 기쁨은 주고, 일시적은 만족은 줄지언정, 결국 우리의 삶을 더욱 번잡하게 하고, 고통과 분쟁은 계속적으로 커져갑니다. 이처럼 번잡해진 마음들을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로 집중해야 합니다. 힘들고 어려워도 하나님을 붙잡고 하나님께 나아와 기도해야 합니다. 막힌 사업장에, 고통스러운 가정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선포하고, 그 말씀을 의지하여 움직여야 합니다. 이처럼 하나님 안에서 삶의 위기와 고통들을 넘어서게 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축복과 인도하심으로 형통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에는 잡다한 일들이 끊임없이 다가옵니다. 그러나 이 잡다한 일들로 인하여 우리의 삶이 흔들리게 되면 우리는 하나님을 놓치게 되고, 하나님이 없는 삶은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잡다한 일들로 인하여 우리의 마음이 두 마음으로 분열되었을 때, 하나님을 선택하지 않게 되면, 우리의 마음속에는 의심이 자리 잡게 되고, 이 의심은 요동하는 바다와 같이 우리의 삶을 계속적으로 흔들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분열된 우리의 마음을 단일화시킴으로 오직 하나님께 집중하고 하나님만을 선택해야 합니다.

온전한 삶은 하나님 중심적으로 살아가는 삶입니다. 고통과 위기가 다가올 때,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삶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떤 삶을 원하시는가를 먼저 생각하고, 그 뜻에 따라 움직이는 삶입니다. 이처럼 온전한 삶을 제시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마음속에 확고하게 자리 잡을 때, 우리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흔들리거나 무너지지 않게 됩니다. 우리 안에 계시고, 우리와 함께 싸우시는 예수님으로 인하여 절망가운데서 새로운 소망을 보고, 좌절 속에서 기적을 이루어내며, 무너진 곳에서 더욱 강하게 일어나게 됩니다. 우리의 삶을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과 역사들을 경험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