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가를 치룰 준비

작성자
표재근
작성일
2020-11-30 12:28
조회
1327
우리 안에는 선을 행하기 원하는 자아와 악한 삶으로 이끌어가는 자아가 동시에 존재합니다. 이로 인해 우리는 선을 행하기 원하지만, 오히려 악을 좇아 행합니다. 우리를 악한 삶으로 이끌어가는 죄의 영향력을 끊어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선을 행하기 원하는 자아와의 관계를 잘 형성하고, 악한 삶으로 이끌어가는 자아와의 관계는 끊어내야 합니다. 그러할 때, 우리는 하나님 안에 올바로 설 수 있고, 선을 행함으로써 많은 사람들에게 기쁨과 소망을 줄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더 나은 미래를 위하여. 또는 유창한 외국어를 구사하기 위하여 열심히 공부합니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결심은 약해지고, 공부는 소홀해집니다. 또한 행복한 가정을 만들겠다고 결심하지만, 곧 자녀들의 기대를 외면하고, 가족들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이로 인해 많은 시간이 흐른 뒤에도 우리는 여전히 변화가 없고, 연약하며, 행복과는 거리가 먼 삶을 지속합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한 댓가를 치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신앙의 삶 역시 동일합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는 삶을 살아가기 원합니다. 예배 때마다 거룩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기 원합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들이 주어지기를 소망합니다. 그러나 이를 위한 댓가는 치르려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역사들이 주어질만한 댓가를 치르지 않고,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할만한 댓가를 치르지 않습니다. 결국 우리가 원하는 것들은 실현될 수 없는 막연한 꿈에 지나지 않게 됩니다.

<빌 2:7>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예수님은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 종의 형체란 인간의 육체가 아니라, 종의 속성과 심성을 의미합니다. 종의 속성과 심성은 언제 어디서든지 주인에게 순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로서 무한한 능력과 권세를 가지신 분이었지만, 예수님은 이 모든 것을 비워내셨습니다. 오직 종의 속성과 심성으로 언제 어디서든지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셨고,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기 위해 온 몸과 마음을 드리셨습니다.

이처럼 온전히 순종하는 댓가를 치르신 예수님께서는 언제나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거하셨고, 많은 기적과 이적들을 행하셨으며, 모든 인류를 향한 구원의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또한 다른 사람들을 섬기고 그들을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심으로 수많은 자들에게 기쁨과 소망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예수님의 뒤를 따른다고 말하지만, 종의 형체는 갖지 못하였습니다. 종의 형체로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섬기고 희생하기보다는, 주인의 형체를 가지고 다른 사람들에게 명령하며, 비판하고 정죄합니다. 남편과 부인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녀들의 요구에 반응하지 않습니다. 끊임없는 고통과 갈등을 야기하며, 낙망 가운데 살아갑니다.

<눅 22:44>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피방울 같이 되더라

예수님은 우리와 동일한 육체 가운데 거하셨습니다. 예수님 역시 시시때때로 피곤하고 지치고 배고픈 육체의 한계를 경험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통하여 하나님의 역사가 살아 움직여지도록 하기 위하여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기도하셨습니다. 힘쓰고 애써 기도하셨고, 더욱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이처럼 기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사모하고, 하나님의 역사가 주어질 것을 구하지만, 땀방울이 핏방울이 될 정도로 간절히 기도하는 댓가를 치루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응답이 주어지지 않을 때, 우리는 쉽게 낙망합니다. 그러나 낙망하기에 앞서 우리가 무엇으로 하나님께서 역사하시고 응답하실만한 댓가를 치루었는지 우리의 삶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신앙의 초기에는 영적인 지도자들이 우리를 품고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기도하고 이끌어줍니다. 그러나 신앙이 자랄수록, 이제는 스스로 자신을 세우고, 가정을 세우며, 자신의 모든 삶에 하나님의 역사가 주어지기를 위하여 피땀이 흐를 정도로 기도하는 댓가를 치러야 합니다. 나아가 교회를 섬기고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는 동역자가 되기 위하여 중보하는 댓가를 치러야 하며, 약하고 부족한 자를 돌아보는 섬김의 댓가를 치러야 합니다.

댓가를 치르기 위해서는 먼저 모든 문제의 원인이 나에게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현재 우리의 자녀들이 고통스러워하고, 우리의 가정에 무너짐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나 자신이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나의 가치관과 나의 생활습관이 잘못되어 있기 때문이며, 내가 더 사랑하지 못하고, 내가 더 희생하고 섬기지 못했기 때문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또한 우리의 삶에 하나님의 은혜와 역사가 없다면 나의 신앙이 잘못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아무런 노력 없이도 축복의 삶이 주어질 것이라는 그릇된 신앙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기복적이고 미신적인 신앙관을 깨뜨려야 하고, 막연하고 방관자적인 신앙의 자세를 버려야 합니다. 하나님을 갈망하고, 하나님의 역사가 주어질 것을 위해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기 위해 뼈를 깎는 고통을 견디며 자신의 삶을 변화시켜나가야 합니다.

<시 51:17>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

죄와 허물로 인하여 우리와 하나님의 사이는 막혀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를 짊어지시고, 피를 흘리심으로 하나님과 우리를 가로막은 죄의 담을 허무셨으며,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보혈을 찬양하며 드리는 예배는 우리의 심령이 하나님께 나아가도록 길을 열어주는 예배가 됩니다. 또한 예수님의 보혈의 능력을 의지하여 하나님께 나아갈 때, 영광의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임재하여 주십니다.

예수님의 보혈을 찬양하는 것은 곧 죄인인 우리를 사랑하시고 구원해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것인 동시에, 우리가 죄 가운데 있음에도 불구하고 역사해주시는 하나님 앞에 회개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연약함과 죄악으로 인하여 괴로워하며, 그 죄악에서 돌이키기 위하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으로 간절히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구원의 감격과 회개의 눈물로 하나님께 나아갈 때, 우리는 강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할 수 있으며, 우리의 삶에서 그리스도의 능력이 살아 움직여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의 예배에는 회개가 빠져 있습니다. 부모에게 순종하지 않고, 남편을 무시하고 부인을 폭행하며, 자녀들을 학대하면서 아무런 거리낌 없이 예배를 드립니다. 가족을 비롯한 다른 사람들의 요구를 조금도 수용하지 않으면서도 아무런 부담감 없이 예배를 드립니다. 이처럼 자기를 깨뜨리지 않고 버리지 않는 예배, 아무런 댓가를 치르지 않는 예배를 드린다면, 우리의 삶에는 어떠한 하나님의 역사도 주어질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를 사모하고, 하나님의 역사를 간구합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자녀들 가운데 임재하기를 기뻐하시고, 풍성한 은혜로 채워주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우리의 연약함은 하나님의 임재를 감당하지 못하고, 우리의 삶의 문제들은 하나님의 역사를 제한합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의 임재와 역사를 사모하는 만큼 그 댓가를 지불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임재와 역사를 사모한다면, 그에 합당한 댓가를 치러야 합니다. 예수님처럼 종의 형체를 가져 하나님의 말씀과 뜻에 온전히 순종해야 하고, 우리의 가족과 주위 사람들의 요구에 섬김과 희생으로 응답하여야 합니다. 또한 우리 자신을 하나님 앞에 올바로 세우고, 우리의 가정을 세우며, 교회를 세우고,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기 위하여 땀이 피가 되어 흐를 정도로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연약함과 죄악에서 돌이키기 위하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구원의 감격과 회개의 눈물로 하나님께 나아갈 때, 우리는 강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게 되고, 그리스도의 능력이 우리의 삶에서 살아 움직여지게 됩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역사가 주어지는 삶을 위해 댓가를 지불하는 것은, 곧 악을 행하기 원하는 자아와의 관계를 끊는 것이고, 선을 행하기 원하는 자아와 관계를 형성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댓가를 지불하는 만큼 우리는 악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선을 행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댓가를 치름으로 선을 행할 때, 우리의 삶과 우리의 가정, 우리의 이웃과 우리가 속한 모든 곳에 하나님의 크신 역사와 능력이 가득하게 됩니다.